아카시아에 속은 세월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먼 별에서 향기는 오나

그 별에서 두 마리 순한 짐승으로

우리 뒹굴던 날이 있기는 했나

나는 기억 안 나네

아카시아

허기진 이마여

정맥이 파르랗던 손등

두고 온 고향의 막내누이여


아카시아 - 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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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천둥번개 요란하더니 아침공기가 상쾌합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길은 깨끗합니다.

잔뜩 물먹은 초록 들만 낯빛이 밝아지고 키가 한 뼘씩 올라옵니다.

그렇게 자연이 자연에게 주는 은총이지요.


산책길에서 맡던 아카시아 향도 이젠 다 씻겨간듯합니다. 올해는 꽃도 일찍 피었고요.


그 아카시아 이야기를 쓰려다 찾아보니, 우리 곁에 흔한, 우리가 아카시아로 알던 그 나무가 아카시아 나무가 아니었네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카시아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아까시나무 (Robinia pseudo-acacia)를 가리키고 아카시아 속의 식물이 아니랍니다.

영어 이름으로도 'pseudo-acacia' 즉 '가짜 아카시아'였다니 평생 몰랐던 사실에 또 한 번 허망해집니다.


이름을 짓던 그 어느 시절 영문에 아카시아가 있으니 그냥 아카시아로 하게 된 게 그리되었나 봅니다.


아카시아 껌을 씹으며 놀던 어린 시절, 지긋하던 군을 제대하며 나오던 그때 가득하던 아카시아 향, 자유 민주를 외치던 6월의 최루탄 냄새에 섞인 그 달큰함의 추억들이 혼란스러워집니다.


그 지난 시절을 고치기 아쉬워, 어색한 아카시는 접어두고 그냥 저는 아카시아로 하렵니다. 제겐 앞으로도 그냥 아카시아 나무로 기억하렵니다.

가짜 진짜라는 구분도 어차피 사람들이 만든 것인데,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사는 세상인데, 내겐 이 추억이 아카시아여도 상관없을듯합니다.


김사인 님의 아카시아 한 구절 그려보며 그 시절 잠시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유월이 평화로운 아카시아 향으로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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