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허영자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허영자 - 감

----------------------------

우연히 들른 마트에서 홍시를 봅니다. 습관처럼 한 팩 들고 왔습니다.

한입 베어 물은 감이 제법 답니다.

홍시에 가을이 잔뜩 배어있습니다.


감 한 알 베어 물고 허영자 님의 감을 그려봅니다.


‘젊은 한때 떫고 비리던 내 피도 붉은 단감으로 익어간다’ 지요.


이제 나의 떫고 비린 피의 시절은 지났을 겁니다. 뜨겁고 활기차던 피의 기운의 시절은 지나갔을 겁니다.

그 지난한 세월을 보낸 후의 지금, 그 시간들이 스며든 내 감을 생각해 봅니다.

내 감엔 적당한 단물이 배어있고,

내 감엔 적당한 유연함도 스며있고,

내 감엔 적당한 아량이 남아있어,

세상에 맛난 붉은 단감으로 나누어지고, 혹여 한 알 남거든 겨울날 가지 끝에 남아 허기진 새의 한 끼 밥이라도 될 수 있는 그런 붉은 단감으로 익어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이 시작되는 시월의 어느 날,

가을 햇빛에 나의 단감을 하루 더 익혀보는 오후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이 원숙하게 영글어감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너를 위하여 - 김남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