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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Nov 19. 2018

마지막 잎새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여유로운 휴일의 낮, 커피 한잔을 들고 뒤뜰로 나왔습니다
찬 바람 덕분에 미세먼지가 좀 줄었다고 하여, 도토리 열매와 노느라 신이 난 고양이 녀석과 작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당으로 제법 낙엽들이 떨어져서 낙엽들을 쓸어 모읍니다.
지난주에 쓸어내 온 담 밑으로도 또 낙엽이 한가득입니다. 이 계절이 가는 동안엔 앞으로도 낙엽은 좀 더 떨어지겠지요

낙엽을 쓸면서 문득 ‘마지막 잎새’라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읽었던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책의 제목으로 흔히 알려진 구절이지만 , 이 구절이 새삼 떠오른 건 아마도 얼마 전 회사 직원의 푸념을 들어서 일겁니다
어수선한 계절의 오고 감 속에서 누구나 이 시기는 심란한 시기이겠지요.
그런 시간속에 한 직원이 이리 푸념을 합니다.
‘요즘은 마치 마지막 잎새처럼 매달린 느낌이예요..’
그런 푸념을 중얼대는 직원의 가득 담긴 우울한 표정을 보고 선뜻 아무 말도 건네 줄 수 없었습니다.
힘내라는 섣부른 응원의 말이나, 다들 힘들다는 이야기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을 건 뻔했으니까요. 그저 들어주고 바라봐 주는 수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그 직원이 무심히 던진 그 한마디는 지난 주 내내 마음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잎새’라는 단어에는 절박함이나 외로움, 간절함이 가득 녹아 들어서일까요
어쩌면 그런 느낌은 단지 그 직원 뿐 아니라, 많은 청춘들의 마음이기도 하고, 우리들의 마음이기도 하고, 어쩌면 나의 마음을 대변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낙엽을 쓸다가, 아직 가지에 많이 남아있는 잎새들을 보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저 마지막 잎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바둥바둥 잎새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 내려오기 위한 번지 점프를 하기위해 숨을 고르듯, 나뭇가지를 놓고 땅으로 뛰어 내리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죠.

나뭇잎의 일생에서는 나무에 달라붙어 말라 비틀어지는것보다는,
꼭 붙잡았던 가지를 놓고, 바람을 느끼고, 중력을 느끼며 하늘거리며 땅으로 내려와,
어머니의 품 같은 나의 근원인 땅으로 내려와, 그렇게 또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는것이
그의 생명의 과정일텐데 말이지요.

땅으로 내려 오지 않고는 새로이 태어나지 못하고,
가지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는 또 다른 삶이 시작되지 않는것이지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무언가에 매달려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시간의 굴레에,
사회의 통념에,
스스로의 가면에,
그렇게 주먹을 펴지 못하고 무언가에 꽉 매달려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스스로도 그 손을 놓아야 하는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떨어짐이 아니라 내려가야 함을 생각해 봅니다
낮은곳으로 내려앉아 생명의 시작을 생각해봅니다

초록 짙던 나무도 가볍게 몸을 털어내는 요즘,
마음의 낙엽을 털어봅니다
쥐었던 손을 펴 봅니다.
웅크렸던 마음을 열어봅니다
긴장된 근육을 펴 봅니다.
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숨을 틔우고,
작은 햇살 조각이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는듯 합니다

세상 모든 마지막 잎새들의 편안한 낙하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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