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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Nov 15. 2024

물끄러미 -정호승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당신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볼 때가 좋다

차가운 겨울 밤하늘에 비껴 뜬 보름달이 나를 바라보듯

풀을 뜯던 들녘의 소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듯

선암사 매화나무 가지에 앉은 새가

홍매화 꽃잎을 쪼다가 문득 나를 바라보듯

대문 앞에 세워둔 눈사람이 조금씩 녹으면서 나를 바라보듯

폭설이 내린 태백산 설해목 사이로 떠오른 낮달이 나를 바라보듯

아버지 영정 앞에 켜둔 촛불이 가물가물 밤새도록 나를 바라보듯

물끄러미 당신이 나를 바라볼 때가 좋다


눈길에 버려진 타다 만 연탄재처럼

태백선 추전역 앞마당에 쌓인 막장의 갱목처럼

추적추적 겨울비에 떨며 내가 버려져 있어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 속에는

이제 미움도 증오도 없다


누가 누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사랑보다 연민이 있어서 좋다


​정호승 - 물끄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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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물끄러미'라는 시입니다.


창밖의 아름드리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봄날의 부드러움 속에 잉태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한여름의 뜨거움에 재잘거리다가

지난 세월 물들인 옷을 입은 채

하나 둘

처음 온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는

아무런 욕심도 없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떤 원망도 없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저 사랑이

그저 그리움이

그저 애틋함이 스며 있습니다

아마도 조물주가 우리를 내려다 본다면

그리 물끄러미 바라봐 주실까요

그리 흐뭇하게 보아주실까요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시선 끝에

당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물끄러미  내다보는 시선 끝에

내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 서로

물끄러미 마주 보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로운 하루를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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