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75년이 지나서
이제야
당신의 발자국을 봅니다
75년이 지나서
이제야
당신을 마주합니다
세상에 비틀거리던 발길
삶에 흔들리던 손길
시간에 허물어진 그 마음이
포연 속에서
다치고 찢긴 흉터였던 것을
상잔의 공포를
꿰매며 감싸며 버텨왔던 것임을
75년이 지나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듣습니다.
이제 반가운지요
이제 편안한지요
그날의 동료들과
그날의 전우들과
나란히 함께 한 이름
이젠
당신의 모습대로
평안하시길
이젠
아픔은 덜고
평안하시길
현충가 -김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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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현충일은 여태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살면서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국립 현충원에 다녀왔습니다.
아버지의 위패를 현충원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한번 이야기 한듯하지만, 살아생전 아버지에게 전쟁 이야기나 군대 이야기를 들은 적 없습니다.
평소엔 술에 취해 들어오시고, 맨 정신일 땐 말씀 없이 tv만 보시던 그런 아버지였습니다.
그러기에 내 사춘기 시절 속의 아버지는 근근이 세상을 살아가는 무척이나 작고 외로운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내 나이쯤 돌아가신 후, 이십여 년이 지나 군부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6.25 전쟁 당시 제일 큰 전투인 초산 전투와 춘천 전투에서 아버지의 무공이 확인되어 훈장을 수여한답니다.
일련의 과정 속에 훈장을 받고, 현충원에 아버지를 모시고, 어렴풋하던 아버지의 그 시절을 이리저리 찾아봅니다.
검색한 흔적을 찾고, 잇고, 연결하다 보니
이제서야 조금씩 아버지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그 청춘의 시절에
전쟁의 상처가 얼마나 짙었을지,
그 공포가 얼마나 깊었을지,
그 아픔을 달래기에
그 상처를 덮기에
잊고 싶었기에
지우고 싶었기에
그나마 술이라도 필요했을
그 마음들이
그 세월들이
이제서야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전쟁에서의 훈장이 사회에 나와서는 전혀 무의미했을 그 혼돈의 시절에서, 살아가느라 살아내느라 저마다의 아픔을 매만지며 무던히 버텼을 그 당시 우리 아버지들의 여린 어깨가 짠하게 다가오는 오늘 현충일입니다.
순국선열들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합니다-사노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