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라면 Jan 04. 2019

인수봉 - 정호승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바라보지 않아도 바라보고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리고
울라가지 않아도 올라가

만나지 않아도 만나고
내려가지 않아도 내려가고
무너지지 않아도 무너져

슬프지 아니하랴
슬프지 아니하랴

사람들은 사랑할 때
사랑을 모른다
사랑이 다 끝난 뒤에서야 문득
인수봉을 바라본다

정호승 – 인수봉
--------------------------
이 즈음이 겨울에서 제일 추운 날씨라 합니다.
그렇다면 뭐 이 겨울도 그럭저럭 견딜만 할듯합니다.
이런 추위를 조금만 더 견뎌내면 언젠간 우린 또 봄날의 새싹 이야기를 할거고,
하늘의 미세먼지를 이야기 할거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초록잎에 뜨거운 여름 빛이 내리 쬐겠지요.
계절은 그렇게 오고 감이니까요.
오늘의 추위에, 지금의 아픔에 발을 동동 거리지만, 우리는 그렇게 계절을 겪으며 또 한해 익어가는것이겠지요.

이 겨울에, 정호승님의 인수봉을 그려봅니다.
서울에서 자란 제겐 북한산, 인수봉은 꽤 익숙한 곳입니다.
암벽등반은 하지 못했지만, 자라면서 북한산길에 바라보기도 하고,
근처를 지나가다보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던,
항상 그곳에 있는 모습으로 낯익은 봉우리 입니다.
제 기억엔 항상 몇몇의 사람들이 밧줄에 매달려 암벽등반을 하던, 삶의 도전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봉우리였습니다

어쩌면 인수봉은 시인님이 이야기한것처럼
바라보지 않아도 바라보고, 올라가지 않아도 올라간 것 같은 그런 봉우리인가봅니다

사랑할 때는 사랑을 모른다는 역설은,
사랑이 끝난 뒤에야, 항상 거기에 있던 인수봉을 바라본다함은,
이즈음에 돌아보는 내 삶의 이야기와도 오버랩되나 봅니다.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무엇을 잡으려 그리 손을 꽉 쥐었는지,
잡은 것이 사랑인지,
보낸 것이 세월인지,
이제서 인수봉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구름 걷힌 인수봉을 바라보면,
수천년의 삶의 이야기를 묵묵히 바위에 담아,
인수봉은 여전히 그렇게 앉아 이야기 해주는듯 합니다
‘사람들은 사랑할 때 사랑을 모른다’고 말이죠

다시 걸어가는 첫 걸음의 시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온 세월을 지내며 묵묵히 버티고 앉아있는 인수봉의 무게를 생각해보며
세상 모든이들의 느린 걸음을 응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에 답함 - 나태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