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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Apr 23. 2019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한용운 - 나룻배와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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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더니 하늘만 잔뜩 흐리고 애만 태웁니다.
세워놓은 차엔 먼지만 가득합니다.
온 세상 버석한 먼지를 씻어줄 비가 흠뻑 내려줬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저녁입니다.

흐린 오후,
문득 한용운님의 '나룻배와 행인'이 떠올라 책을 꺼내 읽어보고 한줄 그려봅니다.
오래전 학창시절에 읽어보고는 언제 읽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만,
만해님의 중의적인 감성이 가득한 싯구절이 가슴에 깊이 들어옵니다.
요즘의 찰나적인 핑크빛 단어들과는 또 다른 진중함이 묻어나는 싯구이지요.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뭍만 건너면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리는 당신이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을 기다리며
날마다 날마다 낡아간다합니다.

한용운님의 싯구를 읽으며,
나의 나룻배를 생각해봅니다.
하루하루 낡아가며,
하루하루 손 때를 묻히며
나는, 내 배는,
얼마나 낡아가고 있을까요
거울 앞에서
하루하루 낡아가며
세월의 강을 저어온 내 낡은 나룻배를 비추어봅니다.
내 낡은 나룻배를 도닥여봅니다.

흐린 오후,
오늘도 인생의 긴 강을 헤쳐 건너온 세상의 모든 나룻배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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