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五月 어느 날 그 하로 무덥든 날, 떠러져 누운 꼿닙마져 시드러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뻐처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문허쳤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三百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촉촉한 비가 하루종일 내리더만, 오늘은 정말 멋진 하늘입니다. 바람도 불고, 비로도 씻겨나가서인지, 미세먼지는 한톨도 없어보이는 맑고 화장한 날씨입니다. 여름인듯 올라갔던 기온도, 딱 좋은 온도이고요. 앞마당에 종일 내린 비를 머금은 작약은 꽃을 한아름 피워 냅니다.
작약을 보면서 비슷한 모란이 매번 헷갈리고, 그러다보니 문득 김영랑님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생각나서 먹물 한꼭지 찍어봅니다.
오늘같은 화창한 날이 지나면, 오월 그 하루 무덥던 날이 지나면, 저 화려한 모란은, 작약은, 천지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우린 그렇게 삼백 예순날의 서운함을 간직한채 또 다시 올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려야 하겠지요.
바로 오늘, 우리의 찬란한 봄을 먼저 누려보자고요. 그 화창한 햇빛 뒤의 삼백 예순날의 서운함이 올지라도, 선물같은 오늘을 누렸다면, 다시 올 찬란한 봄이 슬프지만은 않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