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라면 Jul 06. 2019

나비 - 류시화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한조각

나비 / 류시화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지구에 달맞이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이제 막 동그라미를 그려낸
어린 해바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내가 삶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 때문
지구가 나비 한 마리를 감추고 있듯이
세상이 내게서
너를 감추고 있기 때문

파도가 바다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장난치는 어린 물고기 때문이다
바다가 육지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모래에 고개를 묻고 한 치 앞의 생을 꿈꾸는
늙은 해오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너는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나비의 그 날개짓 때문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내 그리움 때문
==========================%%


류시화의 나비를 그려봅니다.

이른 아침 풀꽃에 이슬이 반짝입니다
그 풀꽃 사이로 부지런한 나비 한마리 날아갑니다.
나비는 그렇게 큰 날개짓으로 불쑥 나타났다가는
훨훨 자유로이 날아갑니다

마치 밥 숟가락을 들다가 문득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체증처럼 가슴을 먹먹히 가득 채우다가는
무명실 묶은 새끼 손가락 핏물 한방울에
또 그렇게 꿀꺽 내려가듯이
당신 닮은 나비 한 마리는
매양 그렇게 내 주위를 맴돕니다

오늘 저 나비는 또 누구의 그리움일까요
누구의 먹먹함을 담아 이리도 일찍 날아다닐까요
세상 모든 그리움들의 아름다운 날개짓을 응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괜찮아도 괜찮아 - 디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