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배운 속담중에 '오얏나무 밑에서 갓 끈 고쳐 매지마라'라는 속담이 있었습니다. 공연히 오해받을 일을 하지 말라는 속담이었지요.
흔한 주입식 교육 덕분에 속담도 알고 뜻도 알았지만, 서울에서만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인 탓에 도대체 오얏나무가 무언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채 그리 살아왔습니다.
앞 마당에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봄 날 내내 아주 멋진 꽃을 피우고, 새들도 날아 와 머물곤 해서 마당에 나설때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나무입니다. 몇 주전부터 이 나무에서 열매가 열리더니 지금은 나무에 주렁주렁 한 가득입니다. 작년엔 별로 열매가 열리지도 않더니만 올해는 가지가 부러질듯 합니다. 이 나무가 바로 오얏나무였습니다. 그리고 이 나무에 한 가득 열린 열매는 바로 자두입니다. 자두가 오얏이었던게죠. 봄날에 그리 피었던 꽃은 오얏꽃 (李花)이었고,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던 오얏나무가 바로 이 나무였네요
열매를 한 가득 매단 오얏나무는 매일 마당에 가득하게 자두를 떨어뜨려 놓습니다. 하나 줏어 먹어보니 달기가 그지 없습니다. 다만 꽃 필때 나무에 약을 안 쳐서인지 자두마다 벌레가 있어 먹기는 영 여의치 않습니다. 밤에 창문을 열고 잘 양이면, 후두둑 후두둑 자두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러다보니 매일 아침 자두를 쓸어 한구석으로 치우는게 일입니다
흔한 나무와 흔한 열매 하나가 서울촌놈에게는 이리 반가움을 줍니다. 그게 말로만 듣던 오얏나무란걸 알고는 또 새롭게 보이네요. 나이를 먹었어도 세상은 아직도 모르는 일 투성이입니다. 새로운 일을 알아내는 즐거움이 새록새록합니다. 뒷마당 토마토 잎에 무당벌레가 잔뜩 앉았다고 끌탕하는 소리마져 재미있고 반가운 일입니다. 점심으론 지난 주에 수확해 온 알 큰 감자를 몇개 삶아먹으려 합니다 떨어진 자두를 줏어먹고, 마당의 토마토를 따먹고, 수확해 온 감자를 삶아먹으니 갑자기 오늘은 안빈낙도( 安貧樂道) 의 즐거움이 느껴지는듯 합니다 나뭇잎 사이로 불러주는 신선한 바람도, 비오던 몇날의 흐린 구름 사이로 비추이는 햇빛도 반가운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