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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 정지용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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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 -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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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명절이 명절만큼 반갑지 않아 지고,
명절이 되면 찌뿌둥한 번잡함이 먼저 느껴지는 걸 보면
나이가 들어가나 봅니다.

소설가 김훈 님도 그의 추석 에세이에서 이리 이야기합니다
'지난여름은 징글맞게도 더웠다. 어느 날 갑자기 밤이 가고 아침이 오더니 찬바람이 도적처럼 들이닥쳐서 또 추석이다. ...김훈 의 추석에세이'

찬 바람이 도적처럼 불어오더니 '또' 추석입니다.
그 추석에 또 많은 이들이 '고향'을 다녀가겠지요.
김훈 님처럼 저도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입니다만,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파주입니다
그래서 명절이면 서울로 가곤 했지요.
다른 이들의 고향처럼 실개천이나, 푸른 산이나 너른 들판이 반겨주는 게 아닌,
오래된 골목길, 서울이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한적해진 낯선 8차선 도로, 어릴 적 뛰어놀던 그 땅 위에 번듯이 올라간 낯선 아파트 단지가 매년 생소한 그런 서울입니다.

그런 고향을 생각해보며 김훈 님 에세이에도 나온 정지용 님의 고향을 그려봅니다.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TV에선 즐겁게 귀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여주는 오늘인데, 문득 오늘은 이 시가 그려집니다.

그래도 즐거운 명절인데 너무 시니컬한가요?
누구를 위한 명절인지,
누구를 위한 연휴인지는 굳이 생각하지 말고,
명절 사흘, 잘들 지내고 오세요.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로운 명절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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