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내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인가 본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길 가더라.
그날 밤에 한 소내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나가 보니까 변괴로 다 간데 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 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버리고 싶더라.
이상 - 이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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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입니다. 하늘빛 사이로 내려와 세상을 열고 인간을 이롭게 하고자 시작된 하늘 열린 날 개천절입니다.
열어주신 그 하늘을 내려주신 그 하늘빛을 수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떻게 빛내고 있는지, 그 빛에 뽀얀 먼지를 씌우고 있지는 않는지, 그 하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지는 않는지, 개천절을 맞이해서 돌아봅니다.
개천절의 아침에 이상의 '이런 시'를 한 구절 적어봅니다. 역시 이상다운, 이상 스러운, 이상의 시입니다. 학자들은 굳이 이 시에서 모더니즘이니, 낭만주의의 소멸이니 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만, 그 어려운 얘기는 학교 졸업하면서 잊어버리고, 지금은 그저 가슴 말랑한, 손길 가는, 마음 가는 구절만 생각하렵니다
이 가을에, 이 맑은 하늘아래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평생 그대를 못보고 내 차례에 오지 못해도 그대여 항상 어여쁘시라합니다. 어렵고 복잡한 이상의 시 속에서도 저 말랑말랑한 구절이 배어있다니 참 재미있습니다.
하늘 열린 오늘, 오늘은 이 시를 모두와 나누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그대들이여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