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스윙은 프로샷이지만 막상 타석에선 오비 샷을 치게 되면 인생은 힘 빼고 빈손으로 가는 것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게 하시고,
치는 샷마다 슬라이스가 날지언정 우리 삶의 방향은 어긋나지 않게 해 주시고,
드라이버 잘 쳐놓고 세컨드샷은 뒤땅을 쳤다 해도 우리 인생은 속도보다는 방향임을 깨닫는 기회가 되게 해 주시며,
어프로치 때 어이없는 생크를 내면 인생의 소중한 순간에서 교만을 다스릴 수 있는 교훈을 얻게 하시며,
버디가 보기가 되는 스리퍼팅이더라도 결국은 홀 인하는 끈기와 성취에 감사하는 삶이게 하소서
십 년 백돌이일지라도 싱글과의 라운딩에 주눅 들지 않는 고결함을 갖게 하시고,
가져온 내 볼이 다 OB로 사라졌다 해도 페어웨이에 넘어온 옆 홀의 공에 초연하는 청빈함을 간직하게 하며,
그린에서 내 라인은 읽지 못하더라도 남의 라인은 밟지 않는 섬세한 배려심을 보이게 하시며,
18홀을 마친 후, 가져온 지갑이 텅텅 비었다 해도 클럽하우스의 사우나에서는 신나게 웃을 수 있는 호탕함을 겸비하게 하시어,
골프는 스코어보다 관계가 중요한 것임을, 내기골프보단 명랑 골프가 즐거운 것임을, 게임보다는 운동으로 즐기게 하시고, 연습은 못하더라도 다음 라운딩엔 제발 오늘보다 한 타라도 줄어들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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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라는 운동이 참 많이 대중화되긴 한 것 같습니다만, 여전히 골프에는 복잡한 시선이 가게 되는 운동인 듯합니다.
골프에 맛을 들인 이들에겐, 매일 그린과 골프공만 생각하는 시간이고, 또 어떤 이들에겐 한번 필드 나가보고는 '다시는 못 할 운동'으로 손을 놓기도 합니다. 어쩌면 각자 맞는 운동을 찾아가는 과정이겠죠.
저는 직장 다니던 시절, 우연히 접한 골프이지만, 드문드문 친구들과 어울릴 정도로만 치니 실력은 늘지 않고, 그저 가끔 바람 쐬러 다닐 정도의 실력뿐입니다. 좀 더 연습을 할까 하다가도, 운동을 하고 오면 여기저기 몸이 쑤시고, 간혹 어떤 의사들은 골프가 비대칭 운동이라 몸에 참 안 좋은 운동이라 하니, 그저 살살 친구들 만나서 웃고 떠들 기회로만 삼아왔습니다.
골프라는 운동은 참 다양한 시선을 받는 운동인듯해요. 각종 사건 사고에 자주 연루되고, 영화 속 어두운 이들의 밀담에도 자주 등장하고, 운동실력보다는 옷 자랑, 장비 자랑의 허세에도 유용하지만, 우리나라의 선수들이 세계 곳곳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멋진 스포츠이기도 하고, 그런 꿈나무들이 열심히 도전하는 멋진 종목이기도 하고, 외국에서는 반바지 입고 슬슬 즐기는 캐주얼한 운동이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복장 제한과 규칙이 많은 아이러니한 운동이기도 하고 말이죠
이제 날도 서늘해지고, 골프를 즐기던 이들의 시즌도 점점 마무리되어 가는 듯합니다. 학교 친구들과의 주말 라운딩을 앞에 두고 오랜만에 골프채를 꺼내보면서 골프에 대한 짧은 생각을 해봅니다. 태생이 제한적이고 권위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운동이라 할지라도, 세월이 바뀐 이제는 좀 더 대중적이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바뀌면 어떨까 생각도 함께 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