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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지우기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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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 극적으로 이사를 마쳤습니다.
이번 이사는 이리저리 걱정이 많았습니다.
짐이 워낙 많아 덜어 내는 일도 한참이고
오랜만에 포장이사도 아니고 일반이사로 하니
짐 싸는 일도 보통이 아니습니다

우여곡절 이사는 잘 마치고
이제 남은 건 쌓인 짐의 정리입니다.
이사 온 곳의 짐도 정리하고
두고 온 곳의 짐도 마무리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할 일도 아니고
해도 해도 끝이 나질 않는 듯합니다.

이사 후에 피곤한 몸을 뉘이고 나서 더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같이 이사 온 고양이 녀석입니다.
잔디와 나무가 가득이던 단독주택에서
답답한 아파트로 오게 되니
가뜩이나 환경변화에 예민한 녀석이 밤새 잠을 안 자고 울고 다닙니다.
덕분에 어젯밤은 꼬박 새웠습니다.
새벽이 되니 머리가 아파 터질 지경입니다
몸은 피곤하지, 고양이는 야옹 거리지,
혹시나 이사 온 날 이웃에 피해가 될까 신경도 쓰여
온 몸이 피곤했습니다.
짜증도 나긴 했습니다만, 말도 못 하고 환경이 변화된 녀석의 불안은 또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야옹거리며 집 안을 돌아다닙니다.
그런 녀석을 가만히 보면서
어쩌면 저 녀석의 야옹거림은
먼저 집의 기억을 지우기 위한 리셋 작용은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야옹거리면서 지난 기억을 지우면서
새 집의 데이터를 입력하고 다니는
기억 지우기의 작동일 수도 있겠다 생각도 해 봅니다.

기억과 기역은 다르지만,
그냥 기억 지우기라는 글을 쓰며
세상의 잊지 못할 기억과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과
잊히는 기억의 파편들과
그 흐려지는 기억을 기억함을 묵상해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건강한 기억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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