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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Apr 03. 2020

참회록 - 윤동주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참회록(懺悔錄)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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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좋은 오늘입니다
오늘은 겨우 내 눈에 거슬리던  거실의 유리창의 뽀얀 먼지를 닦아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걸레와 도구를 준비하고 유리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먼지 닦인 유리의 투명함에 내 마음을 닦아낸 듯 마음 또 한 개운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탄력이 붙어 집 안의  유리며 거울이며 눈에 띄는 것들은 다 닦아 내었습니다.
그렇게 닦아낸  유리며 거울을 보니
집안으로 들어오는 봄의 햇살이 조금은 더 짙어진 듯합니다

그렇게 유리를 닦고 난 후에 가만히 보니
다 닦아낸 맑은 유리 구석에 덜 닦인 손톱만한 부분이 눈에 뜨입니다.
일어나 몇 군데 남은 흔적들을 닦아내며 생각해봅니다.
전체적으로 뽀얀 유리안에선 보이지도 않던 손가락 자욱들이 깨끗해지고 나니 더 또렷하게  티끌로 얼룩으로 보입니다.
맑은 곳에서 티끌이 더 부각되는 건가 봅니다

어쩌면 삶도 그럴까요
방탕한 삶과 악의 마음속에선 사소한 실수나 잘못은 표시도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참회하고 정화하여 깨끗해진 마음속에선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도 큰 마음의 짐으로 남는 게지요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서 슬퍼하고 참회하며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닦는 윤동주 님의 참회록의 마음도 어쩌면 맑은 영혼의 가슴 여린 시인의 아픔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유리 한 장 닦아 뿌듯해진 하루,
그렇게 내 마음의 뽀얀 먼지도 이참에 한번 닦아내 봐야 할까 생각해봅니다.
또 한 장의 참회록을 채우면서 말이지요.

세상 모든 선한 영혼들의 평화로운 시간을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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