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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Jun 28. 2018

숲 - 정희성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숲 - 정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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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에 먹을 듬뿍 찍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써 내려간 글자는 ‘숲’이었습니다

한 글자 숲을 그려 놓고 한참을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 봅니다

창 밖 마당엔 , 간밤에 쏟아진 장마비 덕분에 물오른 초록들이 한껏 힘을 내어 올라옵니다

그 짙은 초록을 같이 마시고 싶었을까요

그 서러운 풀빛을 물들이고 싶음일까요

그렇게 숲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 써 본 '숲'에 정희성님의 숲이라는 싯구를 적어봅니다.

숲은 저마다의 모습들이 그대로 모여 그렇게 숲이 됩니다

숲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숲이 되라 부르지 않아도,

나무가 모여, 풀이 모여 그들이 모여 숲이 됩니다


숲에는 누구 하나 타인이 없습니다

숲에는 외로움이 없습니다

숲에 들어가면 그대로 숲이 됩니다

아름드리 고목도, 나무를 감싸며 오르는 작은 풀들도, 화려한 예쁜 꽃송이들도, 이름모를 잡초도, 그렇게 어울려 숲 입니다


시인은, 그런 숲을 생각하며,

낯선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메마른 땅을 봅니다

얽히고설키고 부대끼고 같이 가면서도

결국은 지독한 혼자만의 나무로 그렇게 움직이는 메마른 땅의 사람들을 봅니다


옹기종기 같은 무리끼리 모이다가

또 그 안에서도 다른 색갈, 다른 모양으로 흩어지고 마는

숲처럼 모인 속에서도 철저히 혼자인

숲이 아닌 사람들을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건 사람들일까요

이야기하고 바라보고 같이 걸어가면서도

숲이 되지 못하고 같이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슴 가슴마다 홀로 섬의 유전가를 깊게 새긴 외로움의 족속들일까요

 그 무리안에서 잔뜩 날을 세운 고슴도치로 웅크린 내 모습을 보는 날은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희망일까요.

푸념하고 싸우고 흩어지고 모이고 질책하는 가시 돋힌 화살들이 난무하던 시간속에서도,

지난 밤 월드컵 축구의 한 순간, 같은 시간에 크게 환호성을 하면서 같이 즐거워하는 모습은, 그래도 때론 숲이 될 수 있는, 차차 같이 갈 수 있는, 그리하여 어느 날 너른 광장에 숲처럼 모여 살 수 있는 그런 동질감의 희망을 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이 숲 속 나무처럼,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희망을 나눌 그런 평화로운 시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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