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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Aug 12. 2020

사평역에서 - 곽재구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한조각

#사평역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

곽재구님의 사평역에서를 그려봅니다.

막차를 기다리는 대합실은 그렇게 조용합니다
각자의 사연을 톱밥 난로에 태우며
지난한 시간들을 잔기침에 뱉어내며
그렇게 마지막 기차를 기다리는
눈송이 쌓이는 늦은 밤의 대합실은
저마다의 사연을 태우며
그리 조용합니다.

산다는것은
때론 술에 취한 듯
침묵해야 한다는것을,
자정 넘은 막차에 우리는
단풍같은 몇찾의 차창 너머로
밤 늦은 설원을 달려가야 한다는것을,
삶은 알기에
인생은 알기에
사평역 대합실은
그렇게 잔기침을 쿨럭입니다.

대합실의 풍경은 공항의 풍경과는 사뭇 다릅니다.
두 곳 다 떠남을 준비하는 곳이지만,
대합실의 풍경은 사뭇 인생의 짐이 구석마다 가득해 보입니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그렇게
어느 때엔가 천천히 다가 올 막차를 기다리며
삶의 잔기침을 쿨럭이며
술에 취한 듯 침묵으로 기다릴 때가 있기 때문일까요

장마가 주춤한 어느 여름 날
한 겨울의 대합실을 가슴에 그려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회로운 여정을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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