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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Sep 19. 2020

너의 눈속에 나는 있다-허수경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한조각

너의 눈 속에 나는 있다 / #허수경

나는 그렇게 있다 너의 눈 속에
꽃이여, 내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너를 바라보던 내 눈속에
너는 있다
다람쥐여, 연인이여 네가 바삐 겨울 양식을 위하여 도심의 찻길을 건너다 차에 치일 때
바라보던 내 눈 안에 경악하던 내 눈 안에
너는 있다

저녁 퇴근길 밀려오던 차 안에서 고래고래 혼자 고함을 치던 너의 입안에서
피던 꽃들이 고개를 낮추고 죽어갈 때
고속도로를 달려가다 달려가다 싣고 가던
얼어붙은 명태들을 다 쏟아내고 나자빠져 있던 대형 화물차의
하늘로 향한 바퀴 속에 명태의 눈 안에
나는 있다
나는 그렇게 있다 미친 듯 타들어가던 도시 주변의 산림 속에
오래된 과거의 마을을 살아가던 내일이면 도살될 돼지의 검은 털 속에
바다를 건너오던 열대과일과 바다 저편에 아직도 푸르고도 너른 잎을 가진
과일의 어미들 그 흔들거리던 혈관 속에
나는 있다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리며 뻘게를 찾는 바닷가
작은 남자와 그 아이들의 눈 속에 나는 있다 해마다
오는 해일과 홍수 속에 뻘밭과 파괴 속에
검은 물소가 건너가는 수렁 속에

과거에도 내 눈은 그곳에 있었고
과거에도 너의 눈은 내 눈 속에 있어서
우리의 여관인 자연은 우리들의 눈으로
땅 밑의 물 밑에 어두운 등불을 켜두었다
컴컴한 곳에서 아주 작은 빛이 나올 때
너의 눈빛 그 속에 나는 있다
미약한 약속의 생이었다
실핏줄처럼 가는 약속의 등불이었

===================
코로나가 유행한 후로 마스크가 몸의 일부가 됩니다. 자연스럽게 옷을 입고 신발을 신듯, 이젠 마스크 없이 나서면 허전해진 세상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보면, 사람 알아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얼굴을 다 가리고 눈으로만 마주 보게되니 다른곳에서 만나면 알아 볼 수 없는 요즘입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를 나누려면 자연스레 시선을 마주치게 됩니다. 시선으로 서로의 감정을 읽게됩니다. 미소나 얼굴의 표정으로 이야기 하던 것이 이젠 눈으로 서로의 식별을 하게 되는것이지요.  
눈은 마음의 창이라며 우리의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는 곳이니, 어쩌면 이 시기가 역설적으로 조금은 더 서로의 감정을 보여주고 볼 수 있게 된 걸까요. 하지만 또 한편으론 시선만 외면하면 감정이 단절되는 그런 시기이기도 합니다.

視線은 볼 視와 선 線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 함이 가느다란 선으로 연결되어있다는것이지요.
그 선은 지극히 약하기도 하고, 꽤나 강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의 시선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어느곳에 있어도 , 아무리 많은 군중속에 있어도 사랑하는 이의 시선은 바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의 시선이지요.
하지만 마음이 식었을때의 시선은 거미줄보다 가늘게 끊어집니다. 그저 눈길만 돌려도 끊어지지요. 마음만 돌려도 사라집니다.

바라본다는것은,
시선을 마주한다는것은,
그 선을 통해 마음을 함께 하는것입니다.
그 시선을 통해 사랑을 나누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이와 시선을 마주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요.
함께하는 이의 눈동자를  마주보며  이야기 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요.
이야기는 매일 하지만,
생활은 항상 같이 하지만,
시선은 휴대폰으로만 가 있지는 않았는지요.
대화는 하지만 시선은 모니터로 가 있지는 않았는지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로 오는 시선과 나에게서 가는 시선이 서로 닿지 못한 채 허공에 휘청거리고 있지는 않았는지요.

가족의 눈동자보다, 친구의 눈동자보다 핸드폰 화면을 더 많이 보는지도 모르는 시간입니다.
조용한 토요일,
오늘은 잠시 내 옆의 그 사람의 눈을 들여다 볼까요.
서로의 눈을 마주보아 볼까요.
세월은 흘러서 머리는 희어졌어도
세월은 흘러서 모습은 늙어갔어도
눈동자에 담긴 사랑은
눈동자에 담았던 희망은
아마 지금도 여전함을 보게 될지도요.

세상 모든 이들의 따스한 시선의 마주함을 응원합니다
-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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