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 도종환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의 한 구절을 그려봅니다.
불안하고 치열하던 젊은 시절엔 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태양과함께 달리고 만월아래 지치고 바다에서 환호하던 청춘입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이제 나이가 들어 짚어보니 태양보단 구름 사이의 별이 만월보다는 동짓달 달빛이 애틋합니다 화사한 꽃들보다는 강가의 억새풀이 사랑스럽습니다 밀물 썰물보다 노을 아래 손잡고 흐르는 강물이 정겹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는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채 노을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