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푸른밤 /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삶의 많은 시간은 역설로 채워집니다
사랑하면서도 내뱉은 가시 돋힌 말,
그리워하면서도 차마 앞에 나타나지 못하는 주저함의 발걸음,
긴 세월후에도 채 용서받지 못한 회한의 부끄러움,
이런 주저함과 역설로 채워진 많은 시간들이 돌아보면 아쉬운 나날들입니다
결국엔 그 모든 길이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온 에움길이니 말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돌아가고 더디가고 지척이면서도 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길일지도요
가슴이 뜨거운 시절엔 그렇게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지름길을 코앞에 두고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돌아다니도록 뜨거운 심장은 뛰는거지요
차가운 이성보다는 뜨거운 감성의 심장으로 폭풍처럼 보내는 시간이 우리네 청춘인게지요.
하루에도 몇번씩 열고 닫았을 마음이지만,
그 모든 에움길과, 그 모든 지름길의 끝이
같이 이어져 있음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우리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무성한 백발과 버석한 마음만이 손톱만한 온기를 이어가고 있을겁니다
오늘 걷는 이 걸음이 지름길일지, 에움길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 길 끝 어딘가에선,
좁은 골목길을 돌고돌아 내딛은 그 끝에선,
수줍은 모습으로 당신과 마주하길,
그 날 그 곳에선,
당신의 두 손 뜨겁게 마주잡으며
먼 길 돌아온 여정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길,
그 길의 모든 시간은 당신을 향한 길이었음을 이야기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세상 모든 인생 여행자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