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있나 - 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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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는 선문답이 오고갑니다
화두를 던지면 각자의 생각끝에 깨달음을 얻음이지요.
위의 문장도 그런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라 합니다.
이지표월(以指標月) , 인지견월(因指見月)이라 한답니다
달을 가리키는 것은 깨달음을 위한 방편을 던짐이요, 달을 봄은 실상을 보는것이라합니다.
굳이 이런 불가의 법문까지는 가지 않아도,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답답한 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꼭 이런 사람들도 있을겁니다
본질은 이야기하지않고 말꼬리와 변두리만 이야기하는 답답함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런 상황이 되면 요즘같은 불볕더위 여름보다 더 열불 터질일일겁니다.
문득 이 글을 써보다가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달을 가리킬 때 손가락을 보는건, 어쩌면 저 먼 곳의 달보다는 옆에 있는 이의 손가락이 더 마음에 들어서 일 수도 있겠다고 말이지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으면 그의 모든것이 새록새록 하겠지요.
그러니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뻗어도 내 사랑하는 이의 손가락이 더 멋지고 예쁘고 사랑스러우니 손가락만 쳐다볼 일입니다.
콩깍지 낀 사랑의 눈을 어찌 막겠습니까.
꽁냥꽁냥 사랑의 시간엔 손가락 뿐 아니라
그의, 그녀의 손톱 때까지 귀여울텐데요.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달을 가리킬때 손가락만 보고 이야기하던 그 숱한 사람들은, 답답하거나 무례한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야기하는 나를 사랑해서였던게 아닐까.
정치판에서 서로 싸우며 서로 달과 손가락만 주고받던 그들은 실상은 서로 애틋한 우애를 가졌던건 아닐까.
모임에서 뜬금없이 딴소리하던 그들은 어쩌면 모임을 지극히 사랑한 수줍은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이리 생각해보면 답답하던 그들을 조금은 이해할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뜨거운 여름밤,
그래도 달은 밝게 떠 있습니다
오늘 밤엔 달을 가리켜 볼까요
옆에 있는 그의 시선이 달을 향하는지,
내 손가락을 향하는지 한번 볼까요.
그의, 그녀의 시선이 달이 아닌 내 손가락 끝을 향한다면, 같이 마주보고 사랑한다 해 보세요.
있잖아요,
저기 저 달 좀 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