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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계절산타 Feb 16. 2021

꾿빠이, 이상(김연수, 2001)

실존이 신화화될 때.

언제 여유를 느끼는가? 나는 소설을 읽을 때다. '생산적'이라는 단어와 멀리 떨어져 있고, 존재하지 않는 세게를 만나는 일은 여유로워야 가능하다. 잉여로운 시간마저도 현실적 효용과 미래 가치를 따져 선택해 가는 각박함속에서 '소설 읽기'는 나에게 '내가 꽤 멋진 인간임'을 증명하는 행위이다. 다큐 같은 소설은 -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 같은 - 현실의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어서 읽는 내내 어떤 행위와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져서 여유로움을 주지 못한다.


'꾿빠이, 이상'(김연수, 문학동네, 2001)은 나에게 한껏 여유로움을 선물한 책이다, 2001년 출판되었지만 나는 19년이나 지난 2020년에 읽었다. 천재 이상(李箱)을 소재로 이 소설은,「데드마스크」「잃어버린 꽃」「새」등 세편으로 나누어지고, 각기 다른 세 명의 주인공이 화자가 되어 소설을 끌고 간다. 이상이 정말 이상적으로 소재화되어 있다.



'실존의 영역에서 신화의 영역으로 상승할 때, 궁극적으로 진위 여부는 우리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중략)... 이상은 신화의 영역으로 들어갔고 외전은 더 이상 없다는 얘기'(꾿빠이 이상, 김연수, 문학동네, 2001, 전자책 기준)


위의 문구가 이 소설의 핵심 같다. 소설을 요약하는 일만큼 헛되고, 의미 없는 일은 없으니, 읽어본 후 왜 이 문구가 핵심이라고 했는지 생각해 보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는 아니라는 것이죠. 보는 바에 따라서 그것은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중략)... 진짜라서 믿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진짜인 것이고 믿기 때문에 가짜인 것이죠"


우리가 믿는 것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감히 말하지만 참 잘 쓴 소설이다. 읽는 재미도 상상하는 재미도 짜 맞추어가는 추리 기능도 곳곳에 남겨져 있는 한껏 여유로울 수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덤으로 생각할 거리도 준다.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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