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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계절산타 Apr 01. 2021

사냥꾼, 목동, 비평가(프레히트, 2020)

가치 상실에 대한 불안은 크고 중요한 주제다.

미래 사회는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미래를 주제로 한 다양한 예술 작품은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지구는 파괴되고,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고, 찬란한 문명은 산산조각이 난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처절하게 분투한다. 분명 상상의 결과일 텐데 아름답지 못하다. 왜 그럴까?


인간의 파괴적 본능을 자극하는 단순한 흥행 카드일까? 꼭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생각의 본질이 어디선가 본 것을 떠 올리는 것이기에, 작품은 현재에서 본 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직관의 작동일 것이다.


디지털이라는 유령이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이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고민이 있다면 살펴볼 멋진 책이 있다. '사냥꾼, 목동, 비평가'(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2020, 열린 책들) '우리가 어떻게 살게  것이냐'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으냐' 문제의 핵심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책이다. ,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간다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책의 제목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5년 브뤼셀 망명시절 술에 취해 그렸다는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사냥꾼), 오후에는 가축을 몰고(목동), 밤에는 사색과 비평을 하는(비평가)'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에서 따 왔다. 목적이 뚜렷한 일도 하고, 타인을 돌보며, 삶과 사회에 대해 사색하는 것도 가능한 사회다.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쓰고, 생각하는 완전한 인간의 삶이 실현되는 사회를 이상적이라고 본 것 같다. 사냥꾼, 목동, 비평가는 기계가 노동을 대신하고, '좋아요'가 마음을 대신하고, 인공지능이 생각을 대신하는 사회에서는 사라질 것이라는 은유가 이 책의 제목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문화는 삶에, 기술은 생존에 복무해 왔다. 오늘날 기술은 우리의 삶을 규정하지만, 어떤 문화가 우리의 생존을 보존할까?'라는 질문이 나는 이 책에서 가장 강렬했다. 그리고 미래를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자칫 잘못하면 '한쪽에는 기본 소득과 소비, 오락으로 살아가면서 데이터 소유자로서만 약간의 가치가 있는 <쓸모없는 인간들>, 다른 쪽에는 돈을 점점 더 많이 벌고, 자신의 직업을 자식에게 물려주며, 자신의 <엘리시움>에 사는 소수'로 이루어진 두 가지 계급사회가 도래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는 이미 실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너무 삐딱하게 세상을 보고 있는 책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다시 한번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 철학책이다.

한국에서 출판된 르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책을 모두 번역한 박종대님의 '옮긴이의 글' 마지막 부분은 이 책을 권하는 최고의 추천사이다.


"그는 어지러울 정도로 빨리 변하는 사회를 향해 이렇게 묻는다. 왜, 어디다 쓰려고, 무엇을 위해 이렇게 진보하는가? 쓸모없는 철학이 쓸모만 강조하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쓸모 있는 물음이다. 현대 사회에서 철학의 역할을 다시금 성찰하게 된다.'


철학의 필요를 꼭 확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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