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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계절산타 Apr 02. 2021

김 박사는 누구인가(이기호, 2013)

여백은 이야기를 만든다.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노래 한곡에 엄청난 감정을 싣고, 테크닉을 고, 그것도 모자라 영혼까지어 올려 가수들은 노래한다. 노래 한곡에 승부수를 던지는 비장함이 보인다. 사람들은 열광한다. 눈물까지 흘린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점점 불편했고, 어느 순간 시청을 멈추게 되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짧은 노래 한곡에 담긴 엄청난 노력과 무게감이 노래를 편안하게 듣지 못하게 만들었다. 과잉의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아직도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평가를 하고 당하는 모습도 싫긴 하고!


나는  호흡의 소설을 좋아한다. 단편은 뭔가 하다가  느낌이 있기도 하지만, 노래 경연대회와 비슷하게 과한 설정, 과한 표현, 과한 결말  과한 부분이 있다. 힘이 단단히 들어간 경직된 모습이랄까.


'김 박사는 누군인가'(이기호, 2013, 문화과지성사)라는 소설을 소개 받았다. 단편집이었다. '읽을 가능성이 희박하군!' 혼자 생각했다. 찾아보니 전자출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할인 쿠폰도 있고 적립금도 있고 해서 속는 셈치고 샀다. 읽었다. 과하지 않다. 오히려 여백이 확 느껴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 속에  가지씩 여백을 두고,  여백을 채우려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법인데, 그게  세상 모든 이야기들이 태어나는 자리인데, 그때의 나는 그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는 소설의  대목처럼  단편 소설집여백이 풍부했다. 힘빼고 여유있게 읽을  있었다. 단편인데 긴호흡이 가능했다. 심지어 소설가는 아예 독자들에게 채울  있는 여백을 물리적으로 제공하기까지 했다.

소설을 서사적으로 요약하는  만큼 불필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요약 정리해서 얻는게 별로 없다. 계획한 것처럼 되지 않는 인생처럼 그냥 읽다보면 행복한 순간도, 불행한 순간도, 화나는 순간도, 달달하고 간질간질한 순간도, 분노의 순간찾아 온다. 예기치 않은  시간을 충분히 즐기면 된다.  소설을 요약할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지금 참아내고 있는 그 무엇으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소설가의 말대로 나는 소설 요약을 참아내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위해!!


참 좋다. 재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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