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은 나를 포함한 '누구나' 일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은 '복수의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로 이어지는 복수의 모든 것을 담은 복수 시리즈 영화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복수시리즈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납치와 감금 그리고 복수로 이어지는 구성과 각 영화별 등장인물의 교묘한 교차성 등은 시리즈로 보기에 충분했다. 짧은 시간 압축적으로 복수 시리즈를 완성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비포 선라이즈'(1995), '비포 선셋'(2004), '비포 미드나잇'(2013)로 남녀의 사랑을 시리즈로 만들었다. 영화배우들도 이 영화와 함께 나이가 들어갔다. 20대, 30대, 40대의 사랑과 대화, 소통방식을 잘 엮어낸 작품이다. 18년 정도의 제법 긴 시간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정유정 소설가는 '7년의 밤'(2011), '28'(2013), '종의 기원'(2016)을 통해 인간의 '악'에 대해 글을 썼다.
종의 기원은 정유정 소설가의 '악' 시리즈 마지막 편에 해당될지 모른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악에 왜 관심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밝힌다. 악을 제대로 응시해야 악이라는 포식자가 우리 삶을 위협할 때 대처할 수 있다고 한다.
소설가가 직접 이야기를 한 것처럼 이 소설은 악인의 탄생기이다. 어둡고, 칙칙하다. 희미하고 답답하다.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악은 완성되어 간다.
기다리는 법을 배웠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인간은 이 지상의 생명체 중 자기 욕망에 대해 가장 참을성이 없는 종이었다.'는 것이 작가가 마주한 악의 본질이자 인간 종의 기원인지 모른다.
악은 운명처럼 끝내 벌어진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그것도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지금 여기는 참 이쁜 계절이다. 꽃이 피고, 연두와 초록이 공존하는 멋진 계절이다. 이 계절에 이 책을 읽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역설적이게도 괜찮다. '태양이 은빛으로 탔다. 5월의 여울 같은 하늘 아래로 띠구름이 졸졸 흘러갔다'는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아름다운 시간과 계절에 읽기 좋은 소설이다. 물도 없이 고구마 백개를 입에 넣고 씹는 기분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