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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이름 없이도 경쟁력이 있을까?

동네 단골집에 머물 것인가, 프랜차이즈로 확장할 것인가

by 브라키오사우루스

금융회사라고 해서 데이터로 금융만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잘 다져놓은 토양이 있어 그 위에 비즈니스를 쌓을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더 성장하기 어렵게 만드는 한계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실현이 가능하던 그렇지 않던 사업의 끝에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데이터 사업을 하다 보면 간혹 이 운동장을 뛰어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운동장도 얼마나 큰데, 다 걸어는 봤어? 사람들은 말합니다. 뷔페집에 가서 모든 음식을 먹어보지 않더라도 이 뷔페집이 맛집인지 아닌지, 추천할만한지 아닌지 알 수 있는데요. 모든 음식을 먹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뷔페를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데이터 사업이 바라보는 고객, 내가 가진 데이터, 이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확~ 뛰어오르고 싶다는 충동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난데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저는 때로 잘 세운 계획보다 감이 이끄는 충동이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올랐는데 데이터 가격은 오르지 않습니다. 데이터 비즈니스 시장의 경쟁은 치열합니다. 여러 가지 환경적인 요인이 있어 내가 노력한 만큼 성과가 보장되는 시장도 아닙니다. 데이터를 주로 구매하는 정부기관 및 지자체 시장은 전국 모든 지역이 격전지입니다. 어느 곳 하나 쉽게 계약 가능한 곳이 없습니다.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 서로 비슷한 데이터를 가진 대기업들이 각자의 레퍼런스를 쌓으려고 물량 공세, 가격 공세, 사람 공세를 퍼붓고 있습니다. 그래서 얻게 되는 이익은 아주 작지요.


일반기업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작은 것도 이리저리 굴려보고 여러 기업을 불러 비교를 하고(그러면서 공부를 하고) 돈은 나중에 줄 테니 테스트를 해보자는 달콤한 말을 속삭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말들도 과거의 패턴이지 않을까요? 요즘은 일을 시킨 만큼 대가를 주고, 성과를 내면 보상을 주는 흐름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예산을 받기 위해 작은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이야기를 들을 때, 사실은 임원 보고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데이터 활용에 있어 확신이 없는 건 실무 담당자 같이 보입니다.


비슷비슷 반복되는 미팅 속에서, 조인트벤처를 설립해서 데이터 사업을 같이 하자는 제안에 고개가 번쩍 들립니다. 눈이 크게 뜨이고 귀가 열립니다. 조인트벤처란 특정 업무를 전문적으로 추진할 신규 회사를 만들자는 말입니다. 데이터 기술을 가진 A사와 시장 네트워크를 가진 B사가 합작해서 C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형태죠. 시장 내 가능성이 있는 뚜렷한 주제만 있으면 하겠다고 나서는 기술 기업들은 많습니다. 새로운 주제 찾기가 제일 어려운 일입니다.


회사의 이름 없이도 데이터 사업이 독자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회사의 경계 밖으로 데이터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지를 생각합니다. 브랜드 없이도 성장하려면 데이터 자체의 희소성·활용성·확장성같이 데이터 자체의 강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데이터라는 게 회사에 있지요. 회사를 벗어나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당연한 듯 가져다 쓰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없게 됩니다.

회사 이름 없이 더 넓게 가려면 ‘세상의 데이터를 연결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데이터 중개·유통 플랫폼이 등장한 이유기도 합니다.


초기에는 회사 이름으로 신뢰와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그다음에는 데이터 브랜드를 별도 론칭할 수 있습니다. B2B 플랫폼화를 시도하게 되겠죠. 좀 더 나아가서는 금융의 경계 넘어 모든 산업 데이터를 연결하는 Data-as-a-Service 사업자로 전환하려고 할 겁니다.

각 단계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1. 브랜드 활용: 신뢰성으로 초기 레퍼런스 확보

2. 독립 브랜드 론칭: Data Labs 같은 데이터 전용 브랜드 도입

3. 데이터 서비스화: API, SaaS 형태로 상품화·서비스화

4. 플랫폼화: 산업 간 데이터를 연결하는 데이터 허브 구축

5. 글로벌·산업 확장: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다루는 플레이어로 확장


규모가 커지면 필연적으로 사업인이 필요합니다

작은 가게를 운영할 때는 요리를 잘하는 사장님이 필요합니다. 요리를 잘하는 사장님이 돈 계산에 서툴러도 단골들이 알아서 챙겨주는 동네의 작은 가게요. 그런데 가게 규모가 커지면 경영이라는 걸 어렴풋이 생각하게 됩니다. 흑백요리사에 심사위원 두 명 중 한 명은 깊이 있게 파고드는 요리사이고, 한 명은 요리로 경영을 하는 사람이죠. 요리를 가운데 두고 있지만 두 심사위원이 판단하는 기준은 다릅니다. 시청자들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요.


데이터 사업은 시도 자체로 박수를 받아왔습니다. 데이터를 활용해서 수익 사업이 가능하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데이터 사업은 대부분 데이터 분석가나 IT 개발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데이터를 분석하다가 그 결과물을 팔고, 데이터 개발을 하다가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해 왔습니다. 데이터 사업 규모가 커지면 어떨까요? 우리가 요리 전문가만으로 데이터 사업 경영을 할 수 있을까요? 사업 규모가 커지면 필연적으로 비즈니스 전문가가 등장하게 됩니다.


가내수공업 형태로 데이터 분석을 내가 하고, 계약도 내가 하고, 민원도 내가 처리하고, 세금계산서 발행도 내가 하고, 보고서도 내가 쓰고, 필요하면 설명회 참석도 하고, 이런 흐름에서 변화가 필요해집니다. 엑셀 수작업을 하다 보면 수작업도 익숙해져서 마치 자동화한 것 같은 효과가 나기도 하는데요. 이때 위에서 엑셀 작업을 후임에게 넘기라고 하거나, 자동화하라고 하면 마음 안에서 강한 반발이 듭니다. 노가다지만 내가 이제 익숙해져서 3시간이면 할 수 있는데 인수인계 하려고 하면 정리하는데 하루가 걸릴 테니까요. 성장하고 있는 데이터 사업도 아마 이런 과도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데이터 사업에서 회사의 이름을 거둬내고도, 데이터 비즈니스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올해 100억을 벌었으니까 내년에는 200억을 벌어라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장하지 않는 사업은 가치가 없다고 하죠. 사업은 매출과 이익으로 말하는 거라고도 하고, 성과가 곧 인격이다라고도 하지요. 그런데 조금 더 장기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스타트업이 아니고, 한해만 사업을 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래를 보고 사업을 키워가야 합니다.


데이터 사업 그 자체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회사가 가진 데이터 그 자체에 흔들리지 않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점유율이 높아진다고, 떨어진다고, 어떤 업종에서 약하다고 해서 영향을 받는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데이터에 집중된 비중을 줄이고 데이터를 활용해서 패키징 할 수 있는 능력에 가중치를 둬야 합니다. 똑같은 데이터를 분석해도 그저 그런 결과물을 내는 사람과 기존 시장에 없던 보고서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필요한 데이터를 정의하는 것, 그 데이터를 수급하는 것, 그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해야 되는지 아는 것, 어떤 주제에 어떤 데이터가 가장 어울리는지 아는 것, 데이터를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 이런 것들이 향후에 더 중요한 역량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데이터 전문가들이 많아질 때, 우리는 아마도 회사의 이름을 떼고도 데이터 비즈니스 그 자체로, 실제로 조인트벤처를 설립했던 하지 않았던 ‘데이터 사업 어벤저스’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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