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저녁을 먹으며 아이가 "엄마, 신호등이 노란불인데 브레이크 밟는 버스 처음 타봤어."
"보통 지나가는데 그렇지?"하고 맞장구를 쳐주었습니다.
"**초등학교 사거리 알지? 거기에서 멈췄는데, 창문을 열고 "우산 줄까요?"하고 비 맞고 가는 사람한테 말해서 더 놀랐어." 차 안에도 명언이 코팅되어 붙여져 있고, 해바라기 꽃과 나비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다음에 또 그 버스를 탈 수 있을까? 하며 또 타고 싶은 마음을 은근히 내비치었습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노노에게 우리 집 가는 버스라는 말을 듣고는 손을 높이 들었습니다.
승강장 인도 밑으로 내려오지 말고 차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버스로 달려들지 말 것. 버스가 오면 가만히 서 있지 말고 가볍게 손을 들 것 - 138p 윤리적 버스 승차 중에서 -
"엄마, 이 버스야. 명언 보이지? 그런데 기사님은 바뀐 것 같아."
(두 명의 기사가 같은 차량으로 격일제 운행을 한답니다.)
사진을 찍어도 돼냐고 묻고 싶었지만 운전하는데 방해될 것 같아 꾹 참고 내릴 때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인사를 했습니다.
물론 하차의 품격도 잊지 않았습니다.
1. 하차 벨은 되도록 빨리 눌러줄 것.(ㅅ고등학교 정류장 지나서 사거리쯤에서 하차벨을 눌렀어요.) 2. 내리거든 재빨리 버스에서 벗어날 것.(노노의 옷깃을 당겨 재빨리 인도 위로 올라갔답니다.) - 126p 하차의 품격 중에서 -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안타까운 기억이 많습니다. 눈밑이 쳐지고 주름진 얼굴이 반백년 산 세월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는 나이를 잊고 그때로 돌아갑니다. 어제 고등학교 때 친구와 산에 갔습니다. 가볍게 생각하고 길을 나섰지만 육체적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포기하고 되돌아 서고 싶었습니다.
547.4m 생애 첫 정상등반입니다.
정상에 올라 친구가 싸온 컵라면과 커피를 마시니 살 것 같았습니다. 내려오는 길 얼음 사이로 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손을 담갔습니다. 차가웠지만 멈추지 않았기에 흐를 수 있는 물을 느껴보았습니다. 오늘은 의자에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다리가 당겨와 불편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아픔이 더 해갑니다. 늦었지만 친구에게 좋은 경험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힘들었다고 투덜대기만 했던 게 미안했습니다. 저와의 산책을 위해 준비한 친구의 시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된 내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 네가 죽도록 힘든 건 네 탓이 아니라고, 술 취한 아버지의 학대 때문이었다고, 기죽지 말고 맘껏 날개를 펼치라고, 꼭꼭 당부하고 싶다. -58p 아버지를 닮은 얼굴 중에서-
어른이 되고 나니 누군가가 그려놓은 삶의 노선을 바꾸고 싶어 졌습니다. 마냥 힘들어도 내 마음을 꼭꼭 숨기고 따라만 가면 삶이 평탄할지는 모릅니다. 쌓여가는 삶의 우울함의 나락으로 빠져들다 아차 싶어 고개를 들어보면 우리는 다른 노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달리고 있는 삶의 노선도는 잘 다듬어진 도로가 아닙니다. 울퉁불퉁하고 신호등도 많아서 가속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틈나는 대로 멈춰 서서 하늘을 보고 자연을 느끼며 웃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뒤쳐지는 삶이지만 나름대로 괜찮습니다. 내 삶의 종착역에는 꽃에 물을 주고 낮게 피어있는 들꽃을 허리 숙여 들여다보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