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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담 Jan 22. 2022

부모와 자식 사이

다양한 레시피로 맛나게 살아야겠다.

일본 영화[고양이할아버지]가 '영화가 좋다'에서 이렇게 소개가 됐다.

존재의 가치는 옆에 있을 때는 모르지만 옆에 없을 때 알아진다고 한다.  성우의 내레이션을 들으니 엄마 생각이 났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던 화요일에 엄마가 다녀가셨다. 수건을 개어놓으셨고, 미역국을 한솥 끓여놓고 시래기나물과 멸치볶음을 놓고 가셨다. 집에서부터 짊어지고 오셨을 그 음식들의 무게와 추위는 '네 생일에 엄마가 앞으로 몇 번이나 미역국을 끓여주겠니? '라는 말에 덮였을 거다.

딸이 좋아하는 코다리 조림이나 잡채는 잊으신 걸까? 잠깐의 이기심이 얼굴을 내민다.


귀찮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 엄마께 물만 부으면 바로 드실 수 있는 칼국수를 주문해 드렸더니 편하다고 하신다. 삼시세끼 밥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엄마가 챙겨주는 생일.

새벽에 일어나 미역국에 밥을 꾹꾹 말아먹었다.

그냥 눈물이 흘렀다.


눈 위에 하트를 그려 엄마, 아빠께 사진을 찍어 보내드렸다.

아빠가 많이 좋아하셨단다. 다음에 작은딸 오면 둘이 데이트하라고 엄마가 놀리셨단다. 작은 일인데 두 분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도 부모님의 목소리가 그렇게 높았던 적이 있었나? 진작부터 그렇게 살았더라면 우리 삼 남매 마음이 덜 아팠을 텐데 하는 마음이 잠깐 들었다.


추운 겨울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당신의 겨드랑이에 내 손을 넣어주셨다. 찬 손을 그렇게 엄마의 체온으로 녹여주었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에 개울가에서 맨 손으로  빨래를 한 엄마는 양손이 퉁퉁 부었었다고 표현을 한다.


자식 세명 모두 한겨울에 태어났으니 정말 춥고 아팠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드는 건 왜일까? 나이 드니까 작은 일에도 서운하다고 울먹이는 엄마를 그냥 엄마로 생각했다. 내 삶이 힘들어 원망 대상을 찾은 게 엄마였구나 하는 생각이 왜 이제야 드는 걸까?

내가 이제야 철이 드나 보다. 엄마,라고 혼자 조용히 불러봤다.

엄마는 달을 보면 외할머니가 생각난다고 다. 나는 무얼 보면서 엄마를 그리워할까?


히포크라 라테스는 모든 환자 안에는 그를 고칠 수 있는 의사가 살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노노는 상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서서히 성장하고 있다. 상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지 않다. 서너 살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이곳 상담센터에서 만났다. 서로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잘 치유받기를 바라며 눈인사를 나눈다.


평화는 전쟁에서 이겼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끝냈을 때 평화는 비로소 조용히 찾아든다.


독립적인 성향의 노노가 스프링처럼 툭 튀어 오르려고 준비를 하는 이 시기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길어도 괜찮다. 늦어도 괜찮다.

노노만의 속도이기에 괜찮다.


나만 조심하면 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 그래서는 안된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엄마 노릇을 해야 한다. 아이의 비교 기준은 아이 자체여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알아도 실천하기는 어렵겠지만 해내야 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있는 나.

샌드위치 속처럼 다양한 레시피로 맛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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