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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y Story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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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비 Oct 12. 2024

하늘에서 보낸 열한 시간

2016 유럽 여행 이야기

비행기 탑승까지 술술 순조로웠다.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확인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환했다.


“엄마, 여기 슬리퍼도 들어있어요. ”

“어, 나는 왜 슬리퍼 없지? 엄마, 저는 없어요. ”

“자, 여기 엄마 거 줄게”

“와! 나도 있다. ”


유럽에 가는데 얇은 슬리퍼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은 이코노미 좌석에 만족하며 앞에 보이는 화면에서 우리가 있는 곳과 도착할 곳의 거리를 확인했다.


‘멀구나.’


아이들은 낄낄대며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 고장 난 세탁기 따위는 잊어버리자. ’


비행기에서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며 가는 열한 시간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아이들은 잠도 안 자고 영화를 보고 음식이 나오면 먹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도 영화를 보며 입에 맞는 기내식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다 귀가 불편해 다 끄고 눈을 감았을 때, 이곳이 하늘 위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5층 우리 집 보다도 낮게 느껴졌다.


‘비행기가 도착하면 짐을 어디서 찾더라, 영어로 왼쪽이 레프트(left)고 오른쪽이 라이트(right)였지. 그럼 직진은 뭐더라 ’


나는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마침 도착을 알리고 있었다. 기장은 우리의 여행이 즐거운 추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인사했고 정말 그런 여행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 사람들을 따라가면 짐 찾는 곳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내리는 모든 사람이 짐을 찾지는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갈라져 갈 길을 가기 시작했고 우왕좌왕하던 나는 모두 사라진 텅 빈 복도에 아이들과 남겨졌다. 그 순간 적막감과 벽을 둘러싼 타일의 생소함, 약간 녹색빛이 도는 형광등, 빛깔이라고는 표시판의 노란색뿐인 마치 *고담시(Gotham City)가 떠올랐다.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


일자로 된 큰 복도 그 옆에 좀 더 작은 복도로 이어지는 세 갈래 길에 우리는 서있었다.  처음 나왔던 곳으로 다시 가봤지만 굳게 닫힌 문에 세 갈래 길로 돌아왔다. 앞을 보고 다시 뒤를 봤지만 아무도 없다. 어떻게 아무도 없지?


“엄마, 우리 이제 어떻게 해요.”

“야, 조용히 해. 엄마 생각하는데 방해되잖아.”


그때 어떤 사람이 청소용품이 담긴 카트를 밀고 다가왔다. 만약 다른 사람이 더 있었다면 친절해 보이는 사람을 고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이 사람뿐이다. 게다가 이 사람은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우리 곁을 지나쳐갈 태세였다. 나는 그 사람이 멀어지기 전에 불러 세웠다.


“헬로(hello)”

“Oh, hello”

“익스큐즈미(Excuse me)”

“yes”

“웨얼 이즈 마이 캐리어(Where is my carrier)”

“carrier?”

“플리즈(Please) 마이 캐리어”


그는 나의 양어깨를 잡고 나를 똑바로 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어깨 딱 펴고 당당하게 말하라고”

“yes, yes”

“자 저쪽으로 쭉 가 그리고 오른쪽, 오른쪽, 왼쪽으로 가면 돼. ”

“right, right, left ok?”

“hurry up”

“땡큐! 감사합니다!”


그는 다시 휘파람을 불며 청소 카트를 밀고 갔다.


도착한 곳에는 수하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지 아직 우리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가방이 먼저 왔더라도 그곳에서 몇 바퀴 도는 것이었다. 얼마 후 아이들이 우리 가방을 발견했다. 나는 공항을 나오며 아까 일이 떠올라 웃었다.


‘고마워요. 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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