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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y Story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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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비 Oct 16. 2024

내가 좋아하는 영국

2016 유럽 여행 이야기

영국은 내가 정말 가보고 싶었던 나라다. 먼 나라이웃나라 프랑스 편 다름으로 좋아했던 영국이었은데, 그런 거 있지 않나? 너무 좋으면 그대로 충분한 거. 난 영국에 와있다는 사실만으로 좋았다. 영국의 여느 거리를 걷고 내리는 비를 영국스럽게 맞아보고 영국식 영어가 들리고 굳이 사 먹지는 않지만 피시 앤드 칩스(fish and chips)를 파는 영국에 와본 것으로 행복했다.


영국이 좋은 이유는 크리스마스 감성 때문이다. 영화에서 본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따뜻하고 가족들이 모여 옛 추억을 회상하고 힘든 때를 겪고 있던 주인공이 가족들을 만나 힘을 얻는 그런 줄거리.


영국을 여행하는 동안 아이들과 나도 그런 영국의 감성을 마음에 품게 되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 세 사람은 가난에 쩌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재활용 정리를 하다가 나온 노트에서 큰 아이의 작문 숙제를 발견하고 읽어보게 되었는데 주인공 여학생이 바라본 엄마의 모습은 카드값 결제일에 얼굴이 어두워지고 예민해졌으며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여학생은 빨리 어른이 되어서 엄마에게 보탬이 되고 싶은데 학교 졸업을 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고 자신에게 딱히 재능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이혼하고 아이들에게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도 못할뿐더러 정서적인 충족도 못주고 있으니 내가 백날천날 노력하는 것들이 다 부질없는 게 아닐까. 자문해 본다. 그렇게 물으며 오다 보니 유럽 여행까지 오게 된 거다. 내가 뭘 잘해서 보내주는 선물도 아니고 뭘 잘못해서 오게 된 건데 그게 유럽인 거다. 잘못해서 유럽에 온다면 잘하면 어디로 가게 될까?


나는 열여덟 살에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다. 에이전시를 만나 강남에 있는 어학원을 다녔다. 그러다 다달이 내야 하는 돈을 밀리면서 부모님께 연락이 갔고 나의 꿈은 무산되었다(꿈도 좋지만.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좋았던 때인 걸). 그 후 결혼생활을 시작해 10년 뒤 이혼하면서 나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가끔 미친 사람들(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믿는)이 나를 깔보는 *눈빛으로 지껄일 때면 귀머거리인 양 못 알아듣는 척해야 했다.


*눈빛: 너무 병신 같아서 못 알아볼 수가 없음


영국 이야기를 하려다가 왜 이런 이야길 하게 되었을까. 게다가 2016년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 건데 왜 오늘 겪는 일처럼 화나는 걸까. 왜냐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돈이 없고 여전히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고 정서적인 결함 때문에 사랑하는 법도 모르는 백날천날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숙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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