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유 : 연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유독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참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기에, 공감과 위로를 건네주고 싶은 마음에 저도 비슷한 상황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은 "그건 별일도 아니다"라는 반응과 함께,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더 심각하고 힘든지를 길게 이야기하는 것이었죠.
예전에는 저도 제 고통이 얼마나 힘든지를 구구절절 설명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게 마치 누가 더 불행한지를 겨루는 '불행 배틀'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그 뒤로는 위로와 공감을 건네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그랬더니 불행을 다투는 의미 없는 배틀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방이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고 싶다면, 그 마음을 받아주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만 보면, 그런 이들이 남들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평균의 경제력을 갖추고 있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습니다. 누가 봐도 그럭저럭 갖추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늘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지를 하소연하곤 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법한 것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기 연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사랑이 깊어지면 연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 대상이 유독 안타깝고 안쓰럽게 느껴져서 돌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밝고 행복한 느낌이라면,
연민은 보다 절절하고 애틋한 감정에 가깝습니다.
사랑은 동등한 입장에서 연결되어 있는 감정의 교류라면,
연민은 상대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도와주려는 보호자의 마음이 깃든 감정입니다. 그래서 부족함마저도 보듬어가며 함께 살아가게 하죠.
그런데 연민이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할 때는, 불행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 연민이 깊어지면, 타인의 고통보다 자신의 고통이 세상에서 가장 커 보이게 됩니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 자책과 변명을 반복하며, 성장 과정이나 타인을 탓하고 스스로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이때 타인의 고통은 견딜 만하고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자신은 ‘과장된 고통’ 속에 머물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믿게 됩니다.
이는 자존감을 서서히 갉아먹고, 자신을 한없이 약하고 여린 존재로 여기게 만들죠.
결국엔 자신을 구원하고 도와줄 누군가를 찾게 되고, 이는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결국 지나친 자기 연민은 내면의 고통 속에 갇히게 하여, 스스로 만든 불행 속에 눌려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기 연민이 생길 때는 그 감정에 잠식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빠져나오고 스스로를 성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어리광 부리는 내면의 아이를 다그쳐야 할 때도 있고, 세상과 연결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 자기 연민으로 이어지고,
자기 연민이 깊어지면 불행으로 변합니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자중자애(自重自愛)’라는 말이 있는데요. 자신을 중히 여기고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진정한 자중자애는 사랑이 연민으로 흐르지 않고,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나요, 연민하고 있나요?
사유하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