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면 바보같이 느껴지나요?

오늘의 사유 : 착함

by 루누


어렸을 적, 누군가에게 양보를 하거나 공동체를 위한 일을 하면 “참 착하구나”라는 칭찬을 듣곤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쁘고, 어깨가 으쓱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에서는 착한 어린이상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상장에는 ‘타의 모범이 되었기에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시절, ‘착하다’는 말은 곧 모범이 된다는 뜻이었고, 그것은 최고의 칭찬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착하다’는 말이 마냥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순진하거나 바보 같다는 뉘앙스가 함께 묻어나면서 그 의미가 조금씩 흐려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공동체 속의 나’가 중요했던 시절에서, ‘나 자신’을 중심에 두는 개인주의로의 전환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공동체 속에서의 착함은 종종 자신의 욕구를 잠시 내려놓고 타인에게 양보하거나, 더 큰 가치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할 때 드러납니다.


하지만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양보와 희생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손해’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착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어렵고 힘든 일을 맡아서 하거나, 관계 속에서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과 실리을 똑똑하게 챙기지 못한다는 인상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착하기 위해서도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착함''그렇지 않음'의 경계를 잘 알고, 적당히 양보하되, 욕을 먹거나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는 선까지 나의 이익을 지킬 줄 아는 그런 기술 말입니다.

일명 ‘똑똑하게 착하기’.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런데 저는 바보스럽게 보일지언정 착한 사람들이 참 좋더라고요.

우선 그들에게서만 느껴지는 특유한 무해함이 좋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외면 속에 있는 단단함이 좋습니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상처받거나 속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함을 선택합니다.


들이 선한 것은 실리에 어두운 바보라기보단

선의의 가치를 믿고 존중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과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고 배려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를 수호하기 때문에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실천하고자 착함을 선택하는게 아닐까요?


저는 요즘 같은 세상은 못되기보다 착함을 유지하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세상에서의 착함이란 한 사람의 구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소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보다 훨씬 더 귀한 존재인 것 같아요.


어릴 적 주던 착한 어린이상처럼, 세상에 착한 어른이상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선의 가치를, 선한 이들을 귀하게 여겨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유하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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