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유 : 따뜻함
저희 아버지께서 생전 암투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있었던 일입니다.
갓 의사가 된 것으로 보이는 인턴이 주사를 잘못 놓아 계속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여러 차례 시도 끝에 겨우 제대로 놓을 수 있었고, 의사가 자리를 떠난 뒤 속상한 어머니께서는 숙련된 의사로 바꿔달라고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다 그렇지. 저 친구도 많이 해봐야 실력이 느는 거니까 내가 좀 참으면 돼.”
그 당시 주사도 제대로 놓지 못했던 인턴은 14년이 지난 지금은 능숙한 전문의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는 분명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어떻게 하면 실수하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했을 테지요.
그때 그는 이것도 알고 있었을까요?
저희 아버지에게는 단지 초보 의사를 바라보는 환자의 시선이 아니라, 젊은 청년의 시작을 바라보던 어른의 따뜻한 시선이 있었다는 것을요.
그가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팔을 내어주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고 여겼던 어른의 따뜻한 마음을 말입니다.
저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신입 시절, 제가 관리하던 영역에서 문제가 생겨 고객 댁까지 직접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긴장한 탓에 체하기까지 했었는데요. 문이 열리자마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여 인사드렸습니다.
그때 그분은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그럴 수 있죠. 정말 괜찮아요.”
그 말 한마디에 긴장이 사르르 녹아내리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저는 동료들에게 그날 '천사를 만났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겪은 불편함보다, 그 너머에 있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 일을 계기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 용서가 저를 더 잘하고 싶게 만들더라고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습니다.
처음은 설레면서도 동시에 두렵고, 어설프며 실수투성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 어설픈 실수를 통해 하나씩 배우고, 깨닫고, 성장해 갑니다. 조금씩 익숙해지고 노련해지면서 실수도 잦아들게 됩니다.
저의 시작이 실수투성이였던 것처럼, 삶을 살다 보면 누군가의 어설픔이나 실수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도 찾아옵니다.
어떤 사람은 눈앞의 불편함에 대해 상대방에게 분노나 비난을 쏟아내기 바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런 순간을 포착해서 자신이 받을 보상을 먼저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들은 어쩌면, 누군가에게서 한 번도 따뜻한 마음을 받아본 적 없는 분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과 마음이 있다면,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이 더 크게 보일 것입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더 기회를 주고 싶을 것입니다. 상처받고 좌절하지 않도록 조금 인내해주고, 성장의 과정을 기다려주려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물질적이고 기계적인 거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고, 평가를 주고받는 것이 당연한 시대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꾸만 계산적이고 각박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나의 불편보다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을 헤아리고 보듬는 마음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의 정체는 ‘인류애’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애는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애정 있게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분들은 세상을 따뜻한 온기로 데워 살만한 곳으로 만듭니다. 그로부터 누군가는 깨닫고 성장하고, 또 기회를 얻게 됩니다.
오늘날처럼 문명이 발달한 시대일수록,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AI가 늘어갈수록,
불완전한 우리 인간에게 절실한 것은 인류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말했습니다.
"어떤 상처도, 어떤 실수도, 사랑이 닿으면 다시 살아난다."
여러분에게도 어설픈 시작을 따뜻하게 바라봐준 사람이 있었나요?
사유하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