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유 : 실패
대학 시절, 저희 과에서는 대부분 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년만 최선을 다해보고, 안 되면 그때 포기해라.”
실제로 재학 중에 합격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졸업 후에도 도전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었지만, 많은 수는 기업에 취직 준비를 하거나 대학원 진학이라는 현실적인 길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가끔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이나 유명 기획사의 아이돌을 보면, 얼마나 많은 경쟁자들을 이겨내고 그 자리까지 오른 것일까 상상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빛나는 주인공들만 보였는데. 이제는 같은 꿈을 꾸며 최선을 다해 달렸을 그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들도 한때 같은 꿈을 꾸며 노력을 다했을 텐데, 끝내 선택된 소수만이 그 자리에 설 수 있었을 겁니다.
그 많던 사람들은 각자 차선의 길로 뿔뿔이 흩어졌겠지요.
출세와 성공의 등용문은 언제나 좁습니다.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이상의 자리는 그만큼 들어가기 어렵고요.
하지만 어려운 만큼 들어가게 되면, 마치 절대반지와 같은 강력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존경을 받으며,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그간의 고통과 노력이 몇 배의 보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꿈꾸던 이상이 드디어 현실이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그 문턱에 닿지 못한 많은 이들은 차선의 길을 선택합니다.
꿈꾸던 이상의 세계에 닿지 못한 채, 현실에 던져지게 됩니다.
꿈을 거둔 자리는 막막하지만 결국 타협을 해야하죠.
그들은 내면에 새겨진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동시에 실패자라는 외부의 시선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이루지 못한 꿈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거죠.
결과적으로 대부분은 평범한 삶의 궤도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들의 경험은 인생의 꼬리표처럼 남습니다.
예전에 사업 하려다 실패해서, 예전에 고시 준비했는데 떨어져서, 예전에 운동선수하다가 그만둬서, 라는 말들은 흔히 실패의 이름으로 남겨지곤 하죠.
어떤 이들은 자신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난 그럴 줄 알고 안 했어.”라며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패의 꼬리표'는 아무에게나 붙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꾸고, 현실의 높은 벽을 넘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쳐 본 사람들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들은 때론 실패의 이유를 변명하듯 말하려 하지만, 그 벽을 향해 온몸으로 달려든 자신의 용기를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지레 겁먹고 도전조차 하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충만한 삶을 살았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상의 문은 언제나 좁기 때문에 소수에게만 열립니다.
대다수의 우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현실에 남겨진 이들에게 붙은 실패의 꼬리표는 이상을 향해 발돋움했던 열망의 흔적이자, 꿈을 향해 나아간 발자취이며, 자신의 삶에 예의를 다했다는 증거입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말했습니다.
"실패는 고통스럽지만, 도전조차 하지 않는 삶은 더 비참한 것이다"
여러분에게는 '실패의 꼬리표'가 있으신가요?
사유하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