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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모리 Aug 01. 2021

어서 오세요,저를 좀 봐주세요.

[출간 전 연재] 5평이라는 실험적인 공간


“무야호오~!”


은재가 또 춤을 춘다. 아무도 안 시켰는데 혼자 노래를 틀고 흐느적거린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 웃음이 터지면 옆 사람을 때리는 사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대뜸 미간을 찡그리며 화를 내는 사람. 일단 박수부터 치는 사람. 그러니까 좋고 신나는 기분을 어떻게든 몸으로 표현해야만 하는 사람. 은재는 기분이 좋으면 일단 춤을 춘다. 장소는 아주 조금 중요할 뿐이다.


오랜만에 은재를 만났다. 짧은 여름휴가로 떠난 공주 계룡산 자락 펜션에서도 은재는 ‘무야호’를 외치며 춤을 췄다. 나는 특정 친구에게 다른 인격을 보이는데, 은재에게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고등학생 때의 내가 불쑥 나온다. 언제 모여도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대충 많이 먹는다는 뜻이다.


탁 트인 풍경을 보며 레트로 한 느낌의 컵에 따른 시원한 맥주. 기름에 마늘을 쫑쫑 썰어 넣어 자작하게 끓이다 새우를 넣은 감바스. 우리에겐 가득 찬 냉장고와 정교하게 계획된 먹을 일정만 있었다. 신이 난 은재는 블로그에 올리겠다며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은재는 흥이 많은 친구였다. 특히 떡볶이를 먹을 때면 양발을 번갈아가며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뛰어다녔다. 여고생의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치부하기엔 아쉬울 정도다. 


고등학교 앞에 양대산맥인 떡볶이 집이 있었다. ‘밥보다 맛있는 떡볶이 방이얌(이하 밥맛떡)’과 ‘오뚜기 떡볶이’다. 밥맛떡은 라면 사발같이 오목한 그릇에 떡볶이를 담아 줬는데 칼칼하고 매콤한 양념과 긴 떡이 특징이었다. 가게 이름처럼 웬만한 밥보다 맛있었다. 요즘 작명가들은 밥맛떡방에서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 모름지기 이름이란 어딘가 난해하면서 직관적이고 기억에 남아야 한다. ‘더퍼스트어반힐씨티뷰아파트’ 이런 이름은 난해하기만 하고 재미도 감동도 없다. 차라리 ‘부정부페’가 낫다. (서초 근방에서 택시 타고 가다 발견한 점심 뷔페가 7,000원인 식당이다)


반면 오뚜기 떡볶이는 이름처럼 기교를 부리지 않은 맛이었다. 비닐봉지를 씌운 넓적한 접시에 달곰한 양념장이 적당히 밴 오동통한 떡이 담겨 나온다. 은재는 오뚜기 떡볶이를 거의 2시간에 한 번씩 먹었다. 이곳은 사실 떡볶이보다, ‘욕쟁이 할머니’ 사장님으로 더 유명한 곳이었다. 지금이야 ‘욕쟁이 할머니’는 테마파크나 유튜브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형 또는 박제된 이미지이지만, 당시엔 세미 과거형이었다. 낡은 간판을 열고 들어가면 시원하게 욕부터 해주는 사장님이 그럴싸하게 있을 법했다. 


욕쟁이 할머니라니. 잔뜩 기대하고 처음 갔던 날을 기억한다. 떡볶이는 맛있었지만, 생각보다 욕은 실망스러웠다. 소문과 상상과 달리 사장님은 점잖고 친절해 보였다. 괜한 아쉬움에 남은 양념을 포크로 벅벅 긁고 있을 때 은재가 들어왔다.


“망할 년 또 왔네”


네? 귀를 의심했다. 아니 귀가 뚫린 것 같았다. 방금까지와 전혀 다른 시니컬한 사장님 등에 은재는 “엥잉~ 또라뇨~~~!”하며 달라붙었다가 재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은재는 밥맛떡보다 오뚜기 떡볶이를 자주 갔는데, 아마 자극적인 떡볶이 양념보다 더 자극적인 욕쟁이 할머니의 특별한 관심 때문이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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