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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모리 Aug 04. 2021

좌식 생활

[출간 전 연재] 5평 집에서 뭐 하고 지내?


“만으로 서른 살 되면 크게 한번 아플걸?”


이전 회사에서 ‘만 서른 신고식’을 겪은 인간들이 입을 모아 얘기했다. 숫자로 서른이 아니라 만으로 서른이 될 때면 아플 것이다. 이십 대 후반으로 갈수록 술자리 귀가 시간이 점점 짧아지거나, 과자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한 정도가 아니다. ‘크게 한 번’은 그렇게 만만하게 쓰이지 않는다. 병원 입원 급의 질병이 생긴다고 여러 번 강조해서 말했다. 약간 저주처럼 들렸다. ‘난 아직 젊어요’라고 유세 떨 때마다 꿋꿋하게 만 서른 경험담을 들려줬다. 스피닝 하다가 허벅지 근육이 녹아서 소변으로 나왔다. 위염이 심하게 와서 일주일을 입원했다. 교통사고가 났다. (이건 예외로 치자)


'나는 아닐 거야'라는 근거 없는 낙관과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다. 특히 체력에서는 늘 낙관적이었다. 뚜벅이 서울 생활로 얻은 평균 이상의 기초대사량. 심지어 다닌 학교에는 헐떡 고개가 있었다. 헐떡거리면서 올라갈 만큼 가파른 경사라 생긴 이름이다. 몇 년 동안 고개를 걷고 뛰면서 단련된 허벅지 근육과 체력을 믿고 운동과는 멀리 지냈다. 사실 귀찮았다. 오랜 역사가 있다. 수영장 한 달 끊고 네 번 갔다. 헬스장 삼 개월 끊고 다섯 번 갔다. 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쩐지 회사에는 퇴근하면 운동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무리가 여럿 있었다. 나는 주류적인 신념에 자주 물드는 사람이다. 수영과 헬스장에 처절하게 패배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번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 다른 동료가 인생 운동을 찾았다며 ‘여성전용 순환운동 커브스’에 데려갔다. 이름만큼 요상한 곳이었다. 일반 헬스장에 비하면 아담한 공간에 원형으로 기구가 놓여 있었다. 기구 사이에는 차원 이동 포털같이 생긴 발판들이 놓여 있었다. 알 수 없는 리듬에 따라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돌면서 기구를 쓰고, 발판에서는 제자리 뛰기를 했다.


처음 갔을 땐 선생님이 나를 따라다니며 기구 하나하나 사용법을 알려줬다. 선생님은 나를 리드해서 음악과 타이밍에 맞게 기구로 내 근육을 늘리고 부쉈다. 정성에 감동하여 수업 끝난 뒤 바로 한 달 이용권을 결제했다. 다음 수업 날 다정했던 선생님은 다른 ‘뉴비’에게 다정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밥을 주지 않는 곳이었다. 원형이라 정면에 마주한 사람이 기를 쓰고 운동하는 게 보인다. 아, 이거 언제 끝나지.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저 사람 되게 잘한다. 앗, 나 보고 있으려나? 자의식 과잉이 이겨내기에는 쉽지 않은 곳이었다. 한 달 동안 세 번 갔다.


어느 날부터 술 먹은 다음 날 오른쪽 종아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골반 돌리기 같은 가벼운 스트레칭에도 우뚝, 뿌두득. 다리를 돌리면 다시 그득. 남이 듣기에도 괴기스러운 소리가 났나 보다.


“이 소리가 들려요?”

“네. 너무 잘 들려요. 어디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선배들의 저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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