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집을 내놓은 지 3일 만에 나갔다. 생각보다 빨리 이사 날짜가 잡혀버렸다. 3주 뒤에 떠나야 한다. 서울은 늘 이런 식이다. 나를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2년에 한 번 꼴로 방에서 방으로 이동했다. 건대, 회기, 상봉. 서울 북동쪽에 매달려 어떻게든 서울에 살았다. 네 번의 이사를 거쳐 이제 다섯 번째 이사할 때가 왔다. 이제는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청주에 있는 엄마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방학이어도 시간이 남아돌아도 기어이 서울에 있었다. 심지어 퇴사 후 백수가 되어서도 서울에 있었다.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건 뭐랄까. 패배자가 된 것 같았다. 금의환향이라는 말은 이제는 없다며, 모든 건 서울에 있어야만 유지되고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 서울이 아니라도, 한국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천천히 다가오는 불을 강 건너 구경하는 심정으로 이사 계획을 짜고 있다. 이 강이 점점 말라 붙어 불이 내게 붙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 늘 그랬듯 내 계획대로 흘러간 적은 없으니까. <5평 집에서 뭐하고 지내?> 모티브가 된 퀸사이즈 침대는 당근에 내다 팔 예정이다.
아마 9월쯤에는 캐나다에 있을 것이다. 오늘은 캐나다 역사와 지리를 위키백과에서 찾아봤다. 밴쿠버는 레인쿠버로 불릴 만큼 비가 자주 온다는 정보도 알았다. 이렇게 서서히 알아보다 정신을 차려보면 캐나다에서 울고 있을 것이다.
2월에 신청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3월에 덥석 허가 났다. 3월의 나는 제법 의기양양했다. 이직도 성공했고, 책도 어느 정도 팔렸다. 워홀이라는 선택지도 있었다. 1년을 백수로 지냈지만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정도의 공백기였다. 내가 웰컴 키트를 받기도 전에, 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퇴사한 것도 다 캐나다 때문이다. (아님)
“쿠팡 퇴사하고 워킹홀리데이 간다고?”
도피성 워홀이라고 하면 은은한 동정과 응원을 보내줬을 텐데. 나는 그런 이유는 분명 아니다. 나도 1년은 쿠팡이츠 다닐 줄 알았다. 어렵게 이직한 회사인데(면접만 4시간 봤다), 평판도 있는데 일주일 만에 퇴사하는 미친 사람이 어디 있냔 말인가. 짧은 시간 오래 고민했다. 가장 결정적인 퇴사 사유는 직무가 맞지 않아서였고, 팀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어서 중간에 빠지느니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이 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1주일이나 1년이나. 이왕 이렇게 된 거 광인이 되련다.
캐나다 워홀 왜 가요?
저도 몰라요. 이유는 가서 찾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