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너의 약점이 될 수 있겠어
“이 불안정한 세상에서 내 옆의 너도 불완전하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에게 끊임없이 살아갈 이유를 마련해 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
영화 < 대도시의 사랑법 > 은 어딘가 작위적이고 촌스러운 구석이 있다. 특히나 김고은이 연기하는 역할인 ‘ 재희 ‘ 는 정말이지 이상한 캐릭터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행동과 대조적 이게도 이 영화의 감독은 “ 재희는 사실 이상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우리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해답은 꽤나 극명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재희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후반 부, 등장인물인 흥수가 축가로 부르는 Miss A의 < Bad girl Good girl >에선 이런 가사가 나온다. “ 겉으론 bad girl, 속으론 good girl,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겉모습만 보면서 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의 시선이 난 너무나 웃겨. “ 그렇다. 우리는 우리는 재희의 겉모습과 행동만 보고 “ 그녀는 ~ 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 그녀의 마음은 어떤 모양새인지,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떠한 생각들이 떠오르고 또 외면하면서 살아가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영화 속 인물들도 남자친구가 자주 바뀌는 재희를 보며 ‘ 걸레 ‘라고 단언을 해버린다. 하지만 후에 나오지만 재희는 누구보다 사랑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나는 이성애자다. 나는 평생에 거쳐서 여성들만 사랑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동성애적, 혹은 범성애적 성향을 가진 이들의 삶을 알 수가 없다. 그들이 살아가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매일 밤 스치는 인파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는지, 혹은 싫증을 느끼는지, 누군가 귓속말을 할 때면 혹여나 내 이야기를 하는가 싶어서 무서울 때가 있는지, 그 무엇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그려내는 ‘ 흥수 ‘라는 인물 역시 보면서 조금은 답답하면서도 생경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우리가 그들의 세상을 판단할 이유는 없다. 정확히는 그러한 자격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가 인물들을 그려내는 방식이 그러하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퀴어 문학을 좋아한다. 첫 퀴어 문학을 접했던 열여덟 살의 여름이 기억난다. 내가 읽었던 소설은 최은영 작가님의 작품인 < 내게 무해한 사람 >이었고, 그중 첫 번 째 단편집인 < 그 여름 >이었다. 책에선, ‘ 이경 ‘ 과 ‘ 수이 ‘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읽으면서 “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지? “라는 궁금증에 휩싸였다. 그러다 이경과 수이 모두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몹시 부끄러워졌었다. 처음엔 부끄러웠고 그 이후엔 놀랐었다. 어떤 혐오감 이라던지, 기시감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동성의 사람이 저런 사랑을 나눴다는 사실이 특별해서, 그 사실에 놀랐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생각이 몹시 짧았었다. 동성의 사랑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다만, 어린 나이라 모르는 것들이 많았었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데, 그것에 대해 놀라워한다는 사실조차 그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 특별함의 출처는 그 모습을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할 테니깐. 사회는 종종 이성애자가 아닌 이들을 ‘성소수자 ‘라고 일컫고 그들을 사회적 ‘ 약자 ‘ 로 취급한다. 나는 이 둘 모두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끼리 나누는 것만이 어떻게 사랑인가. 그 생각은 ‘ 이성애자 ‘ 들이 자신을 ‘ 정상 ‘이라고 여기는 것에서 기인한 무지일 것이다.
조금 극단적인 예 일지도 모르겠지만 과거 우생학의 뿌리 역시 저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시작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정상이라는 믿음. 우리가 우월하다는 자만. 살아있는 두 생명이 만나, 그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서로 얽혀 가는 과정이 사랑일 뿐이다. 사랑에 ‘ 약자 ‘ 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일 뿐이다. “ 그렇다면 사랑받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우리들 모두 약자 아니야? “
모두가 나누는 사랑의 형태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동성 간의 사랑이라서 다른 게 아니라, 이성 간의 사랑이라서 다른 게 아니라 그저 각기 다른 사람들이 나누는 사랑이기에 다른 모양일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우리들은 대개 나의 모양이 옳다고 착각하지만 그것은 가장 큰 착각이다.
극 중 재희는 흥수에게 이야기했다. “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너의 약점이 될 수 있겠어. “ 이 문장은 백 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나인 것을 약점으로 만드는 사회가 있다. 그런 세상이 존재한다. 나는 퀴어들이 느끼는 시선,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모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은 알고 있다. 그 따가운 눈초리. 나와 다르다는 시선들. 그리고 그것을 틀렸다고 여기는 인간들이 그들의 세상에서 그들의 존재를 약점으로 만든다. 우리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종종 나의 시각을 가지고 그들의 세상을 평가하려고 든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은 그냥 그대로 뒀으면 좋겠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나는 아마, 죽기 전까지 동성의 사랑을 나누는 이들의 삶에 대해 모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옆에 있는 이들의 삶도 모를 것이고 나를 낳아준 엄마의 삶도 모를 것이고, 심지어는 평생을 사랑하기로 약속할 사람의 삶에 대해서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깐 아는 척하지 않겠다. 그저 모두의 삶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대들 역시 나의 세상을 그렇게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적어도 그것이, 불완전한 우리들이 모여 기어코 안전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 너 ‘ 와 ‘ 나 ‘ 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사실을. 그것이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구원이다. 내가 먼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도 나를 그렇게 봐줄 것이다. 그렇게, 나는 평생에 걸쳐도 모를 그 모든 이들의 각기 다른 삶을 응원한다. 그렇게 재희와 흥수처럼, 다른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