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우리들이 만나 만들어가는 우리
<“고장 난 데가 없는 사람들은 재미없어.” 모가 말했다.
“넌 상처를 받았고, 그걸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숨기지. 그건 괜찮아. 넌 보통 사람일 뿐이라고.”
“괜찮지 않아.”
“난 네가 최악일 때도 다 봤어.” 모가 말했다.
“그렇게 나쁘지 않아. “
(…)
“내가 엉망이라는 걸, 네게는 늘 보여줘도 될 것 같았어.” 모가 말했다. 모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러니까 네가 가끔 무너진다고 해도 아무 쓸모없는 존재라는 소리는 입에 담지도 마.”>
-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中 -
“ 고장 난 인간들끼리 만나 이어가는 유대의 고리, 하나의 거대한 우리로써 우리들을 이 세상으로부터 살아 숨 쉬게 하니깐. “
이 영화 < 바튼 아카데미 >의 원제는 The holdovers, 즉 유임자라는 뜻이다. 무언가의 직위 혹은 처지를 넘겨주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영화의 등장인물인 폴은, 바튼 아카데미의 교사로 재임 중이지만 융통성이 없고 전통에 목매달며 친절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의 그런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학생들, 심지어 교사들까지 그를 싫어한다. 그리고 앵거스라는 한 학생이 있다. 그는 겉으로는 훤칠하고 친구들과 사교적으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 그에게 ‘ 진짜 ‘ 친구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리고 메리가 있다. 메리는 바튼 아카데미에서 조리사로 일 하고 있으며, 그녀는 그의 아들이 바튼 아카데미를 다니다가 대학에 갈 돈이 없어 군에 입대하게 됐고, 그 이후에 전쟁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연말이 됐고 바튼 아카데미에는 방학이 찾아온다. 폴은 원래 방학 동안 학교에 남기로 했던 동료 교사가 어머니가 아프다며 속여서 대신 학교에 남게 되고, 앵거스는 그의 친엄마와 새아버지가 늦은 신혼여행을 떠나겠다며 그를 혼자 학교에 내버려 둔다. 그리고 메리는 죽은 아들이 머물던 공간을 떠나고 싶지 않다며 학교에 남는다. 그렇게 어딘지 모르게 상처가 있는 이들이 학교에 모여서 함께 연말을 보내게 된다.
폴은 이 학교의 학생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이 바튼 아카데미라는 학교는 상류층의 자제들, 즉 매우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고, 그렇게 ‘ 운 ‘ 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그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멍청하게 학교나 다니며 코넬대 같은 명문으로 가는 정해진 인생을 산다고 여긴다. 그렇게 앵거스를 보고도, 그는 “고생을 좀 해야 한다며 복에 겨운 인생을 사는 놈”이라는 폴의 말에 메리가 이야기한다. “그건 모르는 일 아니에요?”
그렇게 후에 밝혀지는 일들을 보면, 앵거스의 친부모님들은 이혼을 했고 친아빠는 정신 병원에 있으며 엄마는 새로운 돈 많은 남자와 재혼해서 지내고, 자신은 엄마가 볼 때마다 아빠가 생각날 거라며 이런 기숙 학원에 그냥 맡겨버린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앵거스는 항우울제를 먹고 우울증을 앓으며, 술집 양아치들이 그저 돈 많은 도련님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삶은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폴이 바라봤던 “ 복에 겨운 놈 “이라는 인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알 수가 없다. 그 속에 숨겨진 상처와 각자의 상처들을 절대 알아차릴 수 없다.
그리고, 폴은 어렸을 적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14살에 도망갔으며 그 이후로 혼자 남아 학업에 몰두해 뛰어난 재능으로 하버드에 진학했지만, 그 이후에도 돈 많은 자제와의 불합리한 사건으로 퇴학을 당하고 지금 이곳 바튼 아카데미에 거의 평생을 살았다. 그리고 그는 트리메틸아민뇨증을 앓고 있으며 그에 관한 콤플렉스로 여자들을 어려워하고 그 역시도 우울증을 앓고 있다. 메리 역시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몹시 괴로워한다.
그렇게 결핍을 가진 이 셋이 모여 함께하는 식사 자리는 얼핏 보면 한 가족의 구성원 같기도 하다. 이들은 함께 2주를 보내며 여러 안 좋은 사건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이 모르던 모습을 서로 보게 되고, 서로의 결핍과 상처를 안아주며 어느새 가까워지게 된다. 깨진 유리조각들이었지만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간다. 홀리데이가 끝나고 학교는 다시 개학을 하지만, 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앵거스는 전학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이에 폴이 거짓말을 하며, 그는 해고를 당하고 앵거스는 학교에 남게 된다.
폴은 이야기했다.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파악하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다.” 하지만 자신이 아빠처럼 될까 봐 두렵다는 앵거스의 말에, “너는 그러지 않을 거야. 너와 아빠는 다른 인간이야. 아빠가 그런 인생을 살았다고 자식이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은 아니야. 우리 아빠도 자신의 신념을 나에게 강요했지만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았어. 그리고 너도 그럴 거야.” 라며, 현재를 알려면 과거가 중요하다던 그였지만 과거는 상관없다고 너의 현재가 중요하다며 이야기한다. 그리고 폴은 이야기했다. “우린 이런 면에선 꽤나 닮았다”라고.
그들은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눈 역시 비슷하다. 하지만 폴은 그와 비슷한 앵거스에게 ‘진실’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앵거스를 위해 거짓말하며 앵거스를 학교에 남게 만든다. 마치 아빠와 앵거스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듯, 너와 비슷한 나지만 이렇게 다른 선택을 했다고. 우리 아빠는 14살에 나를 버리고 떠났지만, 자신은 상징적인 아들로서의 앵거스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떠난다고. 그러니까 너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마지막에, 앵거스와 악수하며 일종의 약속을 유임하며 학교를 떠난다. 그리고 늘 술에 취하고 마셨던 그였지만, 술을 입에 머금고 뱉어내며 그의 다짐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겉으로 괜찮아 보이는 우리들은 사실 대부분이 어딘가 고장 난 사람들이다. 하지만 고장 나지 않은 사람들은 재미가 없다. 그렇게 조금은 망가진 우리들이지만, 서로의 결핍을 알아봐 주고, 따스하게 안아줄 때 ‘피’로서의 연대가 아닌 ‘이해’로서의 연대가 완성된다. 그리고 이 연대는 다시금 낯선 서로를 붙잡아 주며 이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게 만든다. 우리 아빠와 나는 다르다. 아빠가 그런 인생을 살았다고 나도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이 만들어서, 내가 안에서 문을 잠근 결핍은 결국 내가 문을 열어야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그 문을 열었고, 아빠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폴 같은 유임자는 없었지만, ‘이해’로서의 유대가 가능하다는 그 가능성이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앵거스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다른 이들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하며 역사를 알 뿐이지만, 그 과거가, 나의 결핍이 내 인생을 바꿔놓을 수는 없다. 그렇게 이 영화는 세상의 모든 고장 난 이들에게 손을 건네며 새로운 유대를 형성한다.
크리스마스에 이 영화를 혼자 보며 글을 썼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쁜 까닭은, 내게 ‘이해’의 유대로 나를 잡아줄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우리들은, 항우울제를 내려놓고 그들의 손을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우리 모두의 결핍과 상처를 되돌아보게 하며, 이해와 연대로 완성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손 내민다. 그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