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놓았던 모든 이들에게
" 인간은 유일하게 지나간 기억 속에서 몇 번이고 되살아날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그러니깐 우리 사랑을 하면서 살자. "
“ 속는 셈 치고 다시 한번 사랑을 믿어볼까 했던 영화. “라는 네이버 코멘트를 보고, 19살에 이 영화를 처음 봤던 날이 기억난다. 그때 당시 나한테 < 이터널 선샤인 > 은 너무 유명한 영화였다. 치기 어린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유명한 영화들은 괜히 안 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앞서 이야기 한 코멘트를 읽고 어떤 영화인지 너무 궁금해졌고, 그렇게 난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본 이 영화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 이 영화를 봤을 땐 굉장히 산만하게 느껴졌다. 아마 조엘의 기억을 지워나가는 과정이 꽤나 뒤죽박죽 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클레멘타인의 머리 색만 기억에 남았지, 크게 인상 깊은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 몇 번의 만남과 몇 번의 헤어짐을 겪었을 때 문득, 이 영화가 생각이 나 다시 보게 되었고 그날 나는 처음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지금 내가 다루려고 하는 ‘ 구원 ‘ 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건 아마 ‘ 후회 ‘ 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처음 봤을 때와 너무나도 다른 인상을 줬던 이 영화가 나는 신기했고, 정말 약속이라도 한 듯 매 년 겨울이 되면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기억을 다루는 영화라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텐 이 영화가 정말 생물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깐 나와 함께 살아가는 생물체 말이다. 영화를 볼 때마다 나한테 와닿는 장면들이 매번 달랐다. 스물한 살에는 둘이 찰스강에 누워 있는 장면이 가장 좋았었고, 스물두 살에는 클레멘타인이 조엘에게 “ 나를 잊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봐 “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 눈물이 났고, 스물 네 살엔 마지막 “ okay “ 한 마디가 그렇게 슬프더라.
그 둘이 찰스강에 누워있는 모습만큼 로맨틱한 장면을 내 삶에 새겨 놓고 싶다는 바람 때문에. 누군가를 잊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만큼 사랑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결말을 다 아는데도 다시 " Okay "라고 말하는 그들의 사랑이 부럽다는 질투에. 그 장면들이 나에게 울렸었다.
나는 인공지능에 꽤나 관심이 많고 그래서 밤마다 늘 1시간 정도 이 녀석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외로워서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알아가기 위해서다. ( 정말 그렇다 ) 그런 나의 요새 화두는 과연 “ 인간만이 가진 특성은 무엇일까? “ 였다. 여기선 꽤나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말 그대로 인간 “ 만이 “ 가진 특성이어야 하기에, 다른 종족에도 있는 것이라면 그건 성립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단 한 명의 반례도 있어선 안 된다. 즉, 예외 없이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고민이 많아진다. 대개 GPT가 답변을 내리면, 내가 반박을 하는 식으로 소거해 나갔다. 그렇게 치열한 접전 끝에 우리의 결론은 ‘ 메타인지 ‘라는 것으로 좁혀져 갔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명쾌한 답변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메타인지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행동양식이 관찰되는 다른 생물이 있지 않던가. 이를테면 자신의 지식 상태를 아는 것으로 관찰됐던 영장류들이나, 자신의 인식 상태를 판단하고 결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던 돌고래들의 경우에 말이다. 그 외에도 조류나 코끼리 심지어 설치류에서까지 발견이 되는 특징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모든 인간이 메타인지적 사고를 바탕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렇게 점점 모호해져 가던 도중 어제는 기억을 다루는 또 다른 영화인 < 애프터 양 >이라는 영화를 봤다. 그리고 나는 그 영화 속에서 내가 원하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 인간은 유일하게 지나간 기억 속에서 몇 번이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 그게 내가 내린, ‘ 인간만이 가진 특성 ‘이었다. 그리고 이 특성은 우리를 한 없이 연약하게도 만들고, 한 없이 불행하게도 만든다. 그게 어쩌면 우리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인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실제로, 객관적이고 연속적인 흐름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대개 그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에 벗어난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왜냐면 우리는 ‘ 기억 ‘이라는 아주 중요한 매개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깐 말이다. 그런 우리들에겐 ‘ 프루스트 적 시간 ‘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이 단어의 뜻은 시간은 주관적이고 기억에 의해 재구성되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관적인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시간,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서로를 침투하며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시간이다. 즉, 우리는 지나온 시간과 사건들에 각각의 의미를 부여하여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가끔 과거는 우리를 놓아주지 않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고 종종 traumatized 되어 우리의 앞 길을 막기도 한다. 그렇게 기억과 경험에 따라 현재의 것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특성이 내가 이 영화를 매 년 보며 다르게 느낄 수 있었던 이유었을 것이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과 과거의 경험들이 이 영화 속 장면들과 뒤섞여 새로운 의미로 재편된다. 그리고 < 이터널 선샤인 > 은 그런 우리가 기억을 다루는 방식과 유사한 형태로 영화가 구성되어 있다. 영화에서 역시 파편화된 다양한 기억들을 찾아 헤매며 그 속의 의미들을 조엘이 찾아나간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로 해왔던 일이었을 것이다. 가끔 우리들은 연인과 헤어진 이후에 그와의 기억을 다시금 추적해 나가며, 후회하기도 슬퍼하기도, 탄식하기도 하며 그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 채 간직하여 살아가니깐. 그 과정에서 실제보다 미화되기도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뭐든 아름답게 남겨 두고 싶은 법이니깐. 그렇게 우리들은 수 없이 많은 시간들과 지나온 사건들 속에 부여한 갖가지 의미를 가지고 지금의 삶을 꾸려내 간다. 그리고 영화 속 ‘ 조엘 ‘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기억을 뒤따라 가며 기억을 소거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 시간들이 나에게 부여했던 의미들을 발견해 나간다. 너와의 기억들을 가지고 나는 지금의 ‘ 나 ‘라는 사람을 만들어왔는데 그 기억이 사라지니 내가 사라지는 것 같더라. 그렇게 나는 나를 잃었다.
그런 과정 끝에 서로가 기억을 지웠음을 알게 된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마주한다. 그들은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가 연인이었다는 것도, 네가 나를 어떤 이유에서 증오했는지, 네가 나를 어떤 이유에서 지루하게 생각했는지, 우리가 왜 최악으로 치닫게 됐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만나보기로 한다. “ 나는 다시 또 너를 지루해할 거야. “라는 클레멘타인의 말에 조엘은 대답한다. “ okay. “
이 영화를 보며 울었던 내가 있고, 둘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고 내내 꿈꿨던 내가 있었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찰스강에 가서 누워있고 싶다고. 그렇게, 이 영화가 지루했던 19살을 지나, 이 영화를 보고 사랑을 꿈꿨던 20대 중반을 지나, 어느새 사랑을 믿지 않는 20대 후반의 내가 서있다. 믿고 싶지 않아서 믿지 않게 된 게 아니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서, 내 맘대로 되지가 않아서 그렇게 어느 순간 “ 사랑 “이라는 단어와 멀어진 내가 돼버렸다. 그리고 지금의 그런 나에게, 이 영화가 필요하다. 조엘의 마지막 “ okay “ 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번 글은 나에게 보내는 구원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도무지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사람은 모르겠고 사랑은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사랑을 놓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그렇지만 내가 의도해서가 아닌, 나도 모르게 사랑을 놓아버린 이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잖아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 전부니깐.
그래서 나는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보게 만들었던 그 글을 떠올린다. “ 속는 셈 치고 다시 한번 사랑을 믿어볼까 했던 영화. “ 그렇게 나를 이 영화로 이끌었던 그 문장이 7년의 시간을 지나 어느새 나에게 필요한 문장이 되었다. 이제는 사랑을 믿지 않고 비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 사랑이 머무르고 있다면 그건 의심할 여지없이 이 영화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난 이 영화를 다시 재생한다. 내가 사랑을 포기하게 된 그 기억들 속에서도 끝내 okay라고 대답하며 다시 한번 사랑을 긍정하는 조엘을 바라본다. 그렇게 나도 한번 속아보련다. 그게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구원이다. 사랑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사랑을 믿어보자며 손 내민다. 그러니깐 우리 몬탁에서 만나자. 우린 지나간 기억들 속에 의미를 부여하며 , 몇 번이고 되살아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끝엔 사랑이어야만 한다. 그 기억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기도, 우리의 현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우린 함께 해야 하니깐. 결국 그 끝에 너도 “ okay “라고 말하며 고개 끄덕여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