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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일의 썸머 Jun 04. 2020

12년 회사생활, 나는 과장이였다

쉽지않은 퇴직과 자유인되기


청운의 꿈을 품고 시작한 회사생활은 마무리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를 해서, 회사에 직접적으로 제공한 시간과 노동력은 한 달에 한번씩 통장으로 돈으로 환산되어 꼬박꼬박 들어왔다. 처음 시작한 회사생활에서 받은 월급은 아주 적었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 손으로 받아든 월급은 뿌듯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적은 돈이지만, 그 돈으로 저금도 하고, 사고 싶은 물건이 있을때는 과연 필요한 물건이 맞는지, 이 것을 사면 이번달 생활비가 모자라지는 않는지 몇번이고 생각했던 기억도 있다. 사고 싶었지만, 생활비가 모자를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아쉽지만 이내 발길을 돌렸던 적도 수도 없었다.


갓 대학생활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회사원이라는 위치에 걸맞게 탈바꿈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많았지만, 일정하게 한달에 한번씩 통장에 들어오는 적은 수입안에서 현실과 내 욕망을 조절하며 앞에 놓여진 선택지를 하나둘씩 해결해나갔다. 사실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연차가 쌓이고, 이직이라는 것도 한번 해보는 동안 연봉은 높아져갔고, 사고 싶은 물건앞에서 고민하며 결국은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사회생활 초년에 많이 경험했던 일들은 그저 과거가 되었다. 직업의 특성 상, 야근이 많고 항상 납기에 시달려야 했던 업무는 어느 정도는 과하게 소비하는 것으로 그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했다. 즉, 회사에서 받은 만성스트레스와 막대한 업무량을 소화하는 대신, 나는 고민없이 소비를 할 수 있는 돈의 안정감을 얻었고, 그래서 한 때는 소비의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고민없이, 부담없이 누릴 수 있었던 소비의 기쁨은 항상 아슬아슬한 긴장감속에 해야했던 회사생활에 동력이 되어주었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자존감과 자신감을 높여주는 원인이 되어주기도 했다. 돈 한두푼에 찌질하지 않아도 되는 그 상황의 내가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동전의 앞뒤와 같은 양면이 있는 법이다. 막대한 업무량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내 영혼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던 것을 나는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 맞겠다.


12년정도 지속했던 회사생활에서는 모든 업무를 완벽하게 소화하려는 경향이 팀원들간의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실수없이 납기를 맞춰야하는 업무의 특성 상, 그런 나의 일하는 스타일은 틀리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렇게 어느 새 나는 과장의 위치에 있었고, 꾸준히 더 열심히 일한다면 임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차장, 부장이 되어 회사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위치에 올라갈 수 도 있겠다 소망해본 적도 있다.


많은 이들이 회사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회초년생일때는, 들뜨는 마음으로 어떤 우여곡절도 기꺼이 견뎌내보겠다는 마음을 가질것이라 생각한다. 사실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을까를 의심도 해보겠지만, 신입사원 면접에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야근도 불사하며 열심히 일해보겠다"는 말이였으니까.


나 역시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 패기있는 열정적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었다. 사실도 그러했다. 나는 인생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비교적 안정감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지만 맡은 일에 있어서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마무리하는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그러한 성향은 회사입장에서는 열정으로 인식할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이 되어주기도 했다.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경제적 안정은 드디어 실질적인 성인이 되었다는 한 인간으로서 성장의 느낌을 제공해주었고, 한달에 한번씩 일정한 주기로 받는 월급은 사회적 일원의 한 명이라는 안정된 소속감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설레임을 가지고 시작한 사회생활의 경제적 안정과 안정된 소속감의 지속은 12년을 꽉 채우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말았다. 회사에서 과장의 위치면 아직은 회사생활에 매진하며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시기였는데, 생각보다 이른 퇴사는 '이렇게 퇴사할꺼였으면 여러 사람 마음 불편하게 하면서 그렇게 독하게 일할 필요가 있었나?'라는 자조적인 평가를 해본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준비


자, 나는 익숙한 것과 결별을 해야만한다. 한달에 한번씩 들어오는 월급의 경제적 안정감과도 이별을 해야했고, 좋았던 싫었던 그래도 내 청춘의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던 공간과도 이별을 해야했으며, 이제는 더 이상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퇴직을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마음 가득 느껴졌던 감정은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이 아니라, 이제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홀로서기의 쓸쓸함이였다.

아.. 나는 이제 정말 혼자구나


어떤 이유로 퇴사를 결심했든 이미 회사에는 사표를 던져두었고, 밤잠을 설쳐가면서 고민한 결과는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행동을 할 준비를 해야했다. 사표를 쓰고 난 이후에 "너 진짜 멋있다" "대단하다" 등의 동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너 회사나가도 어짜피 이 업계로 다시 돌아올거잖아"의 말로 마음에 아로새기게 되는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감정과도 싸워야했다. (다시는 이 업계로 돌아오지 않을꺼라는 큰 포부의 말을 남기고 회사를 떠난 퇴직자들을 얼마후에 회사에서 다시 보게 될 일이 흔하긴 했다)


그래도 사표를 낼 그 당시는 "억대 돈을 줘도 이건 아니다"라는 지옥같은 마음이 지배적이였으니, 익숙한 것과 결별을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12년간의 회사생활을 마무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회복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 된 몸과 마음의 상태였으니, 사실 회사생활을 끝내는 것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보자는 거창한 포부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나의 생존을 위해 꼭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였던 것이다.


자발적 퇴사 랩소디, 더 이상의 타이틀은 없다


더 이상의 사회적 타이틀은 없다. 중견기업에서 영업팀의 과장타이틀은 비즈니스하기에 어려운 위치는 아니였다. 회사에서 위임해준 나의 사회적 타이틀은 거래업체와 일하는데 어느 정도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거래, 협상을 하는데 있어서 어느 정도 무거운 의사결정의 위치를 위임받았기 때문에, 내 한마디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힘을 뒷받침해주었던 타이틀을 포기하고 회사를 떠났기 때문에, 나는 그냥 평범한 내가 되었다. 좋게 말하면 자유인이 된 것이지만, 12년동안 악착같이 회사생활에서 쌓아올렸던 경력은 회사생활의 테두리밖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누가 나를 내 명함의 과장으로 대우를 해줄 것인가? 과장의 타이틀은 회사안에서만 영향력이 있을 뿐이였다. (물론 이러한 나의 경력은 어떻게든 다른 일에서 긍정적으로 발휘될 수는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쓸모없는 일은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이제는 회사에서 주어지는 타이틀을 달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타이틀을 달기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0에서 시작해서 중간의 고지인 5를 넘어 6, 7쯤 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다시 '0'의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퇴사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타이틀이 없어도 나는 그렇게 많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어떤 우여곡절이 있어도 그것을 감내하고 견뎌내겠다던 사회초년생의 그 마음가짐을 가진 20대 중반의 나를 볼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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