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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일의 썸머 Jul 14. 2020

퇴사 후 떠났던 어학연수에서 마주한 또다른 무게

가볍고 싶었던 시간도 무게는 있더라

상하이의 랜드마크 '동방명주'를 바라보고 있는 내 뒷모습




즐겨 볼 시간이다, 언제 다시 누릴 수 있을지 모르니까


책가방을 들고 알록달록한 형광펜을 비롯한 필기구를 챙겨서 매일 아침 등교가 필요한 학생의 경험을 다시 한번 해볼 수 있다는 설레임, 그 경험을 세상에서 제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중국 상하이에서 할 수 있다는 점은 앞으로 인생에서 다시는 쉽게 해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해져, 모든 감각들이 예민하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해보는 모든 것들이 처음 경험해보는 것 투성이였다. 식사시간이 되어 학교 식당에 갔으나, 메뉴는 온통 중국어로 적혀있고, 그리고 백여종이 훨씬 넘는 식당의 메뉴중에서 어떤 것을 주문해야하는지는 하루에 한번쯤 당연히 마주해야 할 고민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또는 기숙사방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중국어로 처리해야하기 때문에 일처리하는 속도가 훨씬 느려진다는 것. 학교수업은 한톨의 한국어가 섞이지 않고, 중국어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고 주기적으로 시험까지 치뤄야한다는 점. 이 모든 것들을 낯선 언어로 한국과는 다른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스트레스의 여지가 되었지만, 기꺼히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매년 크게 다를 것 없는 반복되는 일상과 회사생활을 하던 12년이라는 시간동안 직급은 달라졌지만 업무 역시 매년 크게 다르지않게 반복되었다. 반복되는 일상과 업무를 퇴사와 함께 중단한 후, 어학연수를 하고자 건너간 중국에서 마주한 모든 것들이 왜 즐겁지 아니했겠는가? 낯선 환경에서 적응해야하는 불편함을 넘어서 고추장과 된장이 그립지 않을만큼 그곳에 있던 시간이 행복했었다.


앞으로 평생동안 다시는 쉽게 얻지못할 기회의 시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업무상 필요했던 납기의 스트레스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고, 우리팀 분기별 매출 실적에서도 자유로웠다. 그래서 누구의 눈치없이 모든 것을 자유의지로만 행동하면 되었을 시간이 주어졌으니, 살아나기 시작한 모든 감각으로 인생 최초의 경험에서 마주한 것들을 예민하고 즐겁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다.


무엇을 해보든지 즐겨 볼 시간과 마주한 것이다. 그것이 중국어공부가 됐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는 경험을 하든, 낯선 땅의 좋은 여행지를 다녀보든, 의지한대로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곳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총결집한 곳, 상하이였다. 생각한 것보다 직접 경험한 이 세계적 도시의 매력은 매일 다양한 새로움이 존재한다는 것이였다. 서울 역시 천만이 살고있는 거대도시로 무궁무진한 매력이 있는 곳이지만, 상하이는 무려 이천오백만의 인구가 살고있으니, 벗겨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매력을 안고있는 도시임은 물론이다. 이 거대도시에서의 하루는 의지만 더해진다면 충분히 다채로운 일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즐겨 볼 시간이다. 언제 다시 누릴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과 걱정'이라는 끈질긴 녀석


중국에 도착해서 처음 한두달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보통이상의 열정이 필요했으므로, 마주한 새로운 것들이 안정을 되찾기까지는 일정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커피를 마시는 걸 유난히도 좋아했으므로, 상하이에서 유명한 카페를 다녀보는 즐거움에도 취해있었다. 그리고 상하이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일상을 블로그에도 열심히 포스팅하고, 결심했던대로 예습과 복습에도 게을리하지 않고 자주있었던 시험준비에도 열심히했다.


매주 주말마다 배드민턴 동호회에 나가서 새롭게 만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도 집중했으니,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그래서 퇴사를 하고 중국으로 떠나오기로 한 결정을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두달을 보내고나자, '불안'과 '걱정'이라는 감정의 녀석들이 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시 학생이 된다는 설레임은 좋은 학생이 되고자 교과과정에 충실하기로 마음먹게 했지만, 어학연수는 긴 회사생활로 인해 오랫동안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에 좀 더 집중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기위해 결정한 것이였고, 어학연수기간에 모범생이 되어보는 경험도 중요했지만, 퇴사를 결심하고 어학연수를 결심하는데 있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걸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자아탐구의 이유도 있었으니, 공부보다 더 우위에 있었던 것은 낯선 이국땅에서 눈앞에 주어진 다양한 경험은 뭐든지 해보는 것이였다.


그래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유로운 일상을 만들어나가고자 생각했는데, 일년 뒤 한국으로 돌아가 마주하게 될 현실이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퇴사를 하고 나서, 계획한 일이라고는 중국 어학연수밖에는 없는데, 어학연수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왔다. 자발적 경력단절자가 되었지만, 일년의 시간이 "일장춘몽"이 되면 안된다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난 '한바탕 봄의 꿈'을 꾸어볼 마음의 준비가 아직 부족했던 것일까?


한번 마음속에 피어든 불안과 걱정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불안과 걱정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자 결정한 중국행에서의 최우선 과제는 중국어에 몰두하는 것으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오랜시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진 사고체계는 퇴사를 하는 과감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남보다 뛰어나게 일을 잘 하지는 못해도, 남만큼은 일을 하고, 또 뒤쳐지지 않아야한다는 회사생활에서 오래 단련된 사고체계가 중국까지 왔음에도 떨쳐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불안'과 '걱정'이라는 녀석들과 타협하는 길을 택하고 말았다.




책상앞에서 망부석이 되다


상하이에서 어학연수 과정의 두 학기를 거치는 동안 각각의 학기마다 두 명의 서로 다른 룸메이트와 함께 살면서 똑같이 들었던 한 마디가 있다.


"넌 왜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니?"


그들은 나와 같은 어학연수생이 아니라 소속 대학교의 정규 대학생들이였는데, 그들 눈에 난 유난히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였던 것이다. 어학연수생이라고 해서 공부를 열심히 안할 이유가 없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도 과한 공부량을 소화했었다.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보상심리가 작용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과한 공부량에 매진했던건 '일장춘몽' 뒤에 마주할 현실에 대한 불안, 걱정, 두려움이였다.  


중국에서 일년의 시간 역시 내가 직접 선택한 현실이였지만, 이 달콤한 시간이 끝나면 다시 직면해야할 또 다른 현실에 덜컥 겁이 났다. 근데 이렇게 빨리 불안과 걱정의 감정을 느껴여야만 한다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니가 지금 20대니? 30대의 시간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는데 그렇게 여유롭겠다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소리쳤다. 그렇게 들려오는 이 소리를 결국 무시하지 못했다. 지친 나에게 잠시 시간을 주겠다고 찾아온 이국땅에서 나의 이성적인 자아는 불안과 걱정을 야기시켰다. 그래서 주말동안에는 책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유의 시간을 갖고, 학교수업을 듣는 주중에는 온종일 공부에 매진하는 타협점을 찾음으로써,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불안과 걱정을 잠재울 수 있었다.


틀린 부분을 선생님께 빨강색으로 수정을 받은 작문숙제


매일 오전 8시반부터 시작된 수업은 12시 10분에 끝이 났다. 수업이 끝나는대로 학교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그 후에는 학교 근처 카페에 가서 저녁 먹을 시간이 될 때까지 망부석이 되어 공부를 했다. 한국인들에게 어려운 성조와 한자를 익히는데 주력했고, 예습과 복습을 하기도 하면서, 그 외에는 일기를 써서 담임선생님께 틀린 부분을 수정받기도 했다. 저녁시간이 되면 학교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에, 이번에는 학교 교실에 가서 문이 닫는 시간까지 앉아서 나머지 공부를 했다.


그렇게 공부할꺼면 한국에서 학원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이랑 무엇이 다르냐며 친구가 한 마디를 했다. 그 친구의 말을 들은 나머지 한 친구는 그래도 한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결과일 것이라며 나를 두둔했다. 두 친구의 말 모두 일리가 있지만, 중국에 어학연수를 온 목적은 이렇게 책상앞에 망부석이 되어 공부하려고 온 이유는 아니였는데 말이다.


회사원의 삶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겠다며 선택한 연학연수였지만, 난 다시 또 다른 삶의 무게를 마주한 것이다.


"그래, 삶은 언제나 만만하지 않았지"




[매거진의 다른 글]

1화. 어느새 서른후반, 전환점이 필요했다

2화. 늦은 시작이란 있는 것인가?

3화. 12년 회사생활, 나는 과장이였다

4화. 퇴사를 위한 단 한가지의 마음가짐

5화. 퇴사 후, 새로운 언어를 배웁니다

6화. 이웃나라에서 늦깍이 학생이 되다

7화. 인생의 고민은 나만 짊어진건 아니였다

9화. 퇴사를 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들


['오백일의 썸머'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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