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백일의 썸머 Jan 05. 2020

어느새 서른후반, 전환점이 필요했다

2018년 상하이어학연수

상하이 샤넬 광고

서른둘이라는 적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나이에 비슷한 취미를 가진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특히 건장한 체격에 체크무늬 넥타이와 검정색 수트가 잘 어울리는 그의 모습에 반했고, 평소 성실한 그의 모습과 서로 비슷한 취미생활의 공유는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해도 별탈없이 잘 살 수 있겠다 싶었다. 


대기업은 아니였지만 내 월급 역시 그가 받는 월급에 비해 크게 적은 편은 아니여서, 신혼집을 마련하느라 운용한 은행 대출 이자도 꾸준히 열심히 잘 갚아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우리의 소중한 첫 아기가 태어났고, 남편과 나는 첫 육아에 힘들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작은 고비들을 무사히 잘 넘어갈 수 있었고 지금은 둘째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덕분으로 다음달이면 평수가 조금 더 넓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할 준비도 해야한다. 이렇게 나는 벌써 마흔을 앞두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마흔즈음의 나의 모습은 이러했다. 나와 비슷한 혹은 나를 좋아해주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어렸을 때부터 아이는 셋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으니, 둘 혹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 그 와중에도 전업주부가 되기보다는 결혼 전에 하던 일을 꾸준히 하며 육아하며 결혼생활을 하는 것. 이렇게 다섯식구가 복닥거리며 알콩달콩하게 사는 것이 내가 계속 오래전부터 그려왔던 모습이였다. 


하지만 서른다섯이 넘어가도록 결혼은 커녕 연애조차 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도 서른 다섯은 많이 늦지 않은 나이라 생각하며 내 자신을 위로했고 어떻게든 사람을 만날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었다. 그렇게 서른 다섯도 지나가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마음에는 우울한 감정이 찾아들었다. 


그렇게 우울한 감정이 찾아왔을 때에야, 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나에 대해서 요리조리 살펴본다는 것은 절대 유쾌한 경험은 아니였다. 


나는 과연 무엇을 잘 하지?
나라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지?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이지?
회사생활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결혼이 내 인생의 목적인가?


나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을 했을 뿐인데도, 스스로조차 답을 하지 못했다. 나와 삼십년을 넘게 함께 살아 왔는데도 시원한 답을 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고, 또 그 답을 찾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리고 그러한 질문속에 적당한 답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만들어내는 시간속에서도 많이 아팠다. 


질문은 했으니, 답을 해야만했지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잘 모르니 과연 이것들이 맞는 대답인가 싶기도 했고, 내가 하는 대답이 정말 내가 원하는 바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나"라는 사람에게 사회가 원하는 바를 투영해서 하는 대답인지도 모호했다. 


성실히 회사생활을 하고, 흠잡을 데 없는 사회생활을 하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나 자신을 가꾸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서른중반을 넘어서도 연애, 결혼에 접근되지 못한 나는 한 마디로 '루저'였다. 그 생각에 날이 갈수록 더욱 우울해졌고,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에 대한 점검의 필요성이 느껴졌고 내 인생의 전반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했다. 남들과 같이 성실히 살아왔지만, 내가 원하는 삶에는 접근하지 못했으며, 그제서야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하는 것이 과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였는지 되풀이해서 질문했다. 


끊임없이 질문해서 얻은 답은, 성실히 해왔던 회사생활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기위한 선택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떠한 사람이고 어떠한 일을 해야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치열하게 하지 않은 댓가는 서른 중반이 되어 혹독한 시간으로 되돌아왔다. 


그 즈음에, 나와의 이런 상황과는 전혀 별개로 중국친구들과 몇 명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또 이와는 별개로 중국어공부를 권하는 친구도 있어서 일주일에 한번에 한 시간씩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 년을 꾸준히 중국어 공부를 했고, 인생의 전환점을 필요로 했던 개인적인 내 상황과 맞물려 회사를 그만두고 중국어 어학연수를 가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당장 할 것이 없으니, 그럼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 즈음에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었으니 중국어 어학연수를 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한 학기를 해외에 나가 공부하는 계획을 세웠고, 짧은 시간동안이지만 내가 공부할 곳을 직접 다녀오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회사휴가를 이용해서 2017년 5월 대만을, 그리고 다음달인 6월에는 상하이를 연속으로 다녀왔다. 중국어를 배우기 위한 곳으로 대만과 중국을 염두해두었기 때문이다.


대만에서는 번체를, 중국에서는 간체를 사용한다는 그 정도의 차이점만 알고 있었고, 대만과 중국에서 중국어 공부를 한다는 것의 차이점은 전혀 모른다고해도 무방했다. 뭐 지금이야, 혹여나 누군가가 중국어를 배우러 간다면 대만으로 가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중국으로 가는 것이 나을까요?에 내 개인적인 견해를 과감없이 얘기해줄 수 있지만 말이다. 


대만 타이페이 랜드마크인 101타워


2017년 5월에는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를 여름휴가로 다녀왔고, 6월에는 짧은 일정으로 상하이에 다녀와서 중국어 공부하게 될 곳을 결정하게 되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대만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많은 기대를 하고 갔었지만, 내가 느낀 타이페이의 우중충한 날씨는 별로 나와 맞지 않았고, 전반적인 도시의 느낌은 회색빛이였다. 이 곳에 머물게 된다면, 안그래도 어둡고 우울한 내 마음이 더 우울해질 것 같았다. 개인적인 사정과 취향의 문제로 타이페이는 내 선택지에서 지워버리고 그러고 어학연수 답사 차 떠난 6월의 상하이. 


상하이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내렸을 때 파아란 하늘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상하이의 주요명소들을 둘러봤고, SNS에서 알게 된 상하이에 살고 있는 중국인 친구가 내 여행길에 동행을 해주며 '이 곳이 루쉰이 살던 곳이였어'라며 도시안내자의 역할도 해주었다. 말로만 듣던 '루쉰'이 살던 곳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흥분되었고, 상하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근대건축물들은 타임머신을 하는 기분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상하이 도시여행의 흥분은 와이탄에서 절정을 맞게 되었다. 


상하이 와이탄의 야경


저녁 야경이 아름다운 와이탄을 보는 그 순간, 어디서 중국어 어학연수를 하게 될지 고민없이 결정할 수 있었다.

 

그래 바로 이곳이야. 상하이


와이탄의 그 로맨틱한 밤의 모습으로도 이 곳에서 공부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중국어 어학연수를 어디서 해야할지 결정은 했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시간 역시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되었다. 우울한 마음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고, 하루하루를 나를 다독이며 혹은 위로하다가 혹은 또 미워했다가, 그러기를 반복하며 시간은 흘러갔고 그렇지만 어학연수 준비도 틈틈히 해야했으며, 12년차에 접어든 회사생활도 정리해야하는 준비도 해야했다. 


그렇게 나는 일평생 처음으로 자발적인 행동으로 인생 전환점의 계기를 만들어냈다. 자발적인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않고 오롯이 직접 번 돈으로 내 선택의 댓가를 치를 수 있었기 때문에 결정할 수 있었고, 그랬기때문에 내 결정에 당당했으며,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내가 져야함도 알고 있었다.


2018년은 비결혼의 댓가로 얻어진 중국어 어학연수를 할 수 있었던 기회비용의 시간이였다. 



앞으로 '과장님은 퇴사하고 어학연수갑니다'라는 매거진에는 2018년 일년동안 상하이 어학연수에 대한 기록이자, 중국어학연수를 고려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그리고 퇴사를 고려하는 이들을 위해 글을 올릴 예정이다. 또 내가 사랑하는 도시 '상하이'를 그 누군가도 좋아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 



[매거진의 다른 글]

2화. 늦은 시작이란 있는것인가?

3화. 12년 회사생활, 나는 과장이였다

4화. 퇴사자를 위한 단 한가지의 마음가짐

5화. 퇴사 후, 새로운 언어를 배웁니다

6화. 이웃나라에서 늦깍이 학생이 되다

7화. 인생의 고민은 나만 짊어진건 아니였다

8화. 퇴사 후 떠났던 어학연수에서 마주한 또다른 무게

9화. 퇴사를 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들


['오백일의 썸머' 인스타그램]

http://instagram.com/jihe.seoul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