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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호 Feb 11. 2022

나 스스로를 구원하라

  

내가 살고 있는 집 주변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아이 맘 카페’가 있다. 사전 예약으로 운영되고, 예약을 하지 않더라도 자리가 있으면 입장할 수 있는 실내 놀이터다. 아이 키우면서 나는 이 카페에 자주 들렸다. 미세먼지가 많고, 날씨가 춥고 더워서 실외 활동이 어려울 때마다 들렸다. 동시에 이 카페는 어린이 도서관에 있는 곳도 있었고,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해서 3시간 정도 아이와 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빠들의 육아 휴직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어린이 집 등원을 할 때에 내 눈에 보이는 아빠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아침을 먹고 10시쯤 카페에 놀러 가면 아빠와 노는 아이들을 찾기란 어려웠다. 제로라고 표현하는 것이 무방할 정도였다. 그래서였는지, 카페를 운영하는 선생님은 나를 잘 대해주셨다. 고마웠다.

  

아이 맘 카페와 더불어 장난감을 빌려주기도 했다. 마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과 같은 시스템이다. 그래서 장난감도 매주 번갈아 가면서 빌렸다. 어차피 아이들 장난감은 몇 일만 지나면 실증을 난다. 그래서 굳이 살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장난감도 자주 빌리다보니 관리자 선생님과 친하게 되었다. 

  

사람의 관계란 묘해서 그 관계를 타고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게 우리네 일상이다. 장난감을 빌리면서 친해진 선생님은 아빠들의 모임인 ‘장난감 고치는 봉사’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그렇게 매달 첫 번째 토요일 오전에 1시간씩 고장 난 장난감을 고치는 봉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같이 가서 간식을 먹으면서 나는 고장 난 장난감을 고치는 토요일을 보냈다. 내가 이런 봉사를 할 줄이야.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시장님이 육아하는 분들의 고충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간담회를 한다”면서 모임에 참석해보시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거절을 잘 못하는 나는 또다시 그 자리에 참석을 했다.

  

기자들과 시장과 일을 하는 공무원들 열댓 명이 그 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육아 고충 간담회는 시작되었다. 여느 간담회처럼 시장님의 훈화 같은 이야기가 먼저였고, 둘러앉은 엄마들이 바라는 육아 정책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놀이터 만들어 달라, 우리 집에서는 카페가 멀다, 산후 조리원 지원금 성남은 준다는데 우리는 안주냐, 출산 장려금 올려달라는 등등 부탁들이 나왔다. 나도 한마디 했다.     

  

“맞벌이이고, 교대 근무를 하는 직장인이어서 저도 육아에 참여를 참 많이 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내는 휴직을 하기도 했고요. 앞서 말씀해 주신 엄마들의 고충들이 마음에 와 닿네요. 제가 보기에 아이들 태어나서 산후조리원 다녀오면서 육아 전쟁이 시작되더라구요. 잘 모르니까요. 그래서 시에서 산모 도우미를 각 가정에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영유아 초반에 엄마들이 정말 힘들거든요. 몸이 제 몸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런데 예산이란 것이 있으니까 쉽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 하나는 꼭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 키워보니까 힘든게 출산할 때이고, 또 하나는 이유식이더라구요. 6개월즘 시작하는 이유식 만드는데 정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일반적으로 락앤락 9개, 냄비 3개를 준비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3일치를 한번에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케이스입니다. 이유식이 죽이라서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 사이에 아기가 얌전히 있으면 다행인데, 상황이란 게 늘 녹록치 않잖아요. 그렇게 이유식 만드는데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이유식을 사먹더라구요. 힘들게 만드는 시간에 아이와 더 많이 놀아주는게 좋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진심을 담아서 부탁드립니다. 시에서 정말 좋은 육아 정책을 쓰시려면 시에서 하고 싶은 정책보다는 정말로 엄마들이 원하는 정책이 필요해요. 그걸 해주셔야 합니다. 작년에도 1조를 넘게 정책에 쏟아부었지만 결국 출산율은 떨어지고, 정책의 수헤를 봐야 하는 엄마들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부탁을 드립니다. 엄마들이 이유식 만들지 않고 사먹지도 않게... 시에서 만들어서 각 가정으로 배달해 주시면 어떨까요? 이제 아이들도 많지 않습니다. 예산도 많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엄청난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그 박수 소리를 들으면서 엄마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느꼈다. 나도 그들처럼 느꼈던 고충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답변을 내놓는 시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제안도 ‘물 건너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간담회의 자리도 결국에는 한낯 정치인의 인기 관리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정책이란 수혜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기도 했다. 

  

그렇게 1시간 남짓한 간담회 시간에 맛있게 준비된 간식을 나는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포장된 선물도 받았다.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이 돈으로 이유식이나 만들어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저출산이 아니라, 이제는 안출산(출산을 안 한다)의 시대 같다. 출산율이라는 통계가 나올 때에만 우리 사회는 반짝 걱정을 하고 그친다. 그래서인지 정말로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아이를 낳으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지 않다.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까 얼마나 힘든지를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나를 낳아준 양가 부모님들이 또다시 손주들을 걱정해 주실 뿐,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나 스스로를 구원해주는 수밖에는. 

  

돌이켜보니, 힘들다고 주저앉은 경우는 없었다. 더 정확하게는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아이를 키우다가 힘겨움에 부딪힐 때마다 내 안에 어떤 불사조 같은 에너지가 생겨나서 헤쳐나갔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랐다. 지난 온 날들을 돌아보면서, 내가 그때 느꼈던 힘겨움이 오늘을 육아하는 부모들에게는 없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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