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서 비로서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이를 보내고 나서도 여전히 집안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만큼 내 안에 아이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것이다. 자유라는 감정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없는 이유였다.
어린이집 앞에는 늘 이산가족 상봉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렇게 헤어지기 싫으면 아이를 맡기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헤어짐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선생님도 아이도 그리고 엄마도 힘들다. 솔직하게 이런 풍경도 처음에만 그렇다. 시간은 사람을 무디게 만들었다. 어린이 집으로 가는 부모의 뒷걸음은 상당히 가벼워보였다. 그리고 하원을 위해 어린이 집으로 가는 뒷걸음은 무거워보였다.
아이를 보내고 집안을 정리하고 반찬을 만들고 빨래를 했다. 그리고 나는 가끔씩 영화를 보러 갔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책을 영화로 각색한 영화다. 나는 책을 읽지 않아서 어떤 내용의 결말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육아 이야기이기도 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다른 것을 떠나서 이 영화의 결말이 궁금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간단히 영화의 스토리를 설명하면 이렇다.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난 김지영이 겪어야 할 고충들이다. 그녀의 엄마가 그랬고, 자신도 겪어야 할 남성주의 시대에서 일어나는 고충들을 똑같이 받아들여야 했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을 잃어야 했고, 맘충이라는 수식처럼 아이 키우는 것 역시 힘든 것이다. 그렇게 그녀에게는 삶의 고민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정신병이 생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동감을 했다. 비록 나는 아빠이지만, 그녀가 겪어야 하는 고충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맞벌이로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 키우는 일은 정말로 힘들다. 직장이 이렇게 편한 곳임을 알게 된 것은 비로서 아이가 태어난 이후였으니 말이다.
영화의 결말을 몰랐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결말일지 궁금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힘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베란다에서 몸을 던지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 죽음이란 현실의 고민을 벗어던질 수 있는 극단적인 선택이지만, 그 선택을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그러한 비극적인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보여지는 수많은 딜레마들은 해결되지 않은 체,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꾸역꾸역 살아갈 뿐이었다. 버티지 못하는 자만이 무너지는 것을 흔하게 봤다.
다행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고민을 해결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썼고, 그 글은 주인공 지영이가 가진 고민을 해결해주는 통로가 되었다. 그렇게 영화는 엔딩을 했다.
솔직하게 나는 약간의 허탈감이 몰려왔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육아로 고민하고 있고, 또한 대부분의 여성들이 직장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 영화가 그런 시대의 부조리함을 고발함과 동시에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다. 그런데 결국에는 그녀만 그 고민에서 해방된 것이 아닌가.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자신의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의 고민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을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김지영이라는 주인공이 쓴 글을 되돌려 만든 영화다. 주인공이 겪는 장면 속에서 동질감을 느꼈고, 동시에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에서 느꼈어야 할 카타르시스에 찬물을 끼얹어 맞은 것처럼 실망했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누구나 고민이 있다. 그것이 육아든, 육아가 아니든 삶에는 고민이 있다는 것이다. 육아만 없다면 인생에 고민이 없을까? 아니다. 아이들의 영유아 시기가 벗어나면 육아의 고민의 해결될까? 그것도 아니다. 차라리 아이가 걷지 못하고 누워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힘든 청춘의 시기가 지나면 행복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노년은 노년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다. 그래서 그 고민을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엄마들의 반상회를 자주 볼 수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야기를 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항상 볼 수 있었다. 비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까운 카페라도 가든지, 집에서 커피라도 마시면서 편하게 이야기하면 좋을텐데...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아빠여서인지, 아빠들끼리의 그런 모습은 단 한번도 보질 못했다. 그러나 비번인 날, 아이들과 하원을 하면서 놀이터에서 자주 놀면서 몇 분의 엄마들과 친해졌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수다도 하나의 스트레스 해결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영화 속 주인공 지영이는 엄마들과의 수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인 글쓰기로 자신의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니,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둘째가 여섯 살이 되는 이 시점까지 대한민국 육아에 대한 부모들의 고민은 개선되지 않았다. 내가 느꼈던 육아의 수많은 고민들을 여전히 지금의 부모들이 겪고 있지 않은가. 그 사이에 아이들이 잘 커줘서 다행이고, 나 역시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았음에 감사할 뿐이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나 역시 또 한명의 김지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한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어떠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수다여도 좋고, 글쓰기여도 좋다. 마찬가지로 아빠이지만 나로 살기로 한 당신에게도 그렇다. 그것이 운동이어도 좋고, 어떤 취미 활동이어도 좋다. 그것이 당신의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당신도 살고, 아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