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남자 선배들이 총각 후배들에게 하는 농담같이 하는 말이 있다. ‘결혼하면 자유가 그립고, 솔로이면 외롭다’는 것이다. 결혼도 하고 자유도 있으면 안 될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조금 더 그 농담 같은 이야기가 진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육아는 쉽지 않은 일상이며, 끝이 없는 무한 반복이다. 그래서인지 직장에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는 늘 힘이 없었다. 동시에 “언제 와?”하는 질문이 뒤를 이었다.
집에 가면 어떤가. 목욕물 받아서 씻겨야 하고, 로션 발라서 아이 옷 입혀야 하고, 화장실 정리하고, 저녁 밥 챙겨야 한다. 설거지 하고 빨래 돌리고 아이와 조금 놀다보면 똥 기저귀를 갈다보면 잠을 잘 시간이 된다. 마치 투잡을 뛰는 것하고 다를 바가 없다. 집은 쉬어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두 번째 직장 같은 곳이 되곤 했다. 잠을 자는 시간이 이렇게 행복할 줄은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다.
회식 같은 자리도 불편하다. 계속해서 “언제 와?”라고 묻는 아내의 전화를 두고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술이라도 마신 다음 날도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아이가 깨어나면 같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빠다. 속은 속대로 불편하고, 머리는 어지럽고, 두 번 다시는 이런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회식도, 친구와의 모임도 모두 끊었다. 그래야 가정에 평화가 왔다.
그렇게 아이는 자랐다.
아이가 조금 자라면 생기는 고민이 하나 있다. 둘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솔직히 나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한명이라도 잘 키워보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강하게 주장은 하지 못해도, 은연 중에 계속해서 ‘이번 생에는 여기까지’가 나의 주장이었다. 첫째도 제법 큰 상황이라서 이제는 육아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었다. 아내는 고민하고 있었다. 내 눈에 그 모습이 보였다.
결혼도 출산도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양가 부모님의 관심도 한몫을 한다. 나의 부모님은 하나만 잘 키워도 된다는 입장이었고, 장모님은 그래도 둘은 있어야 하지 않냐는 생각을 말씀하시곤 했다. 결정은 아내와 나의 선택이지만, 아이는 자라고, 둘째를 낳으려면 너무 늦어도 너무 빨라도 안되는 첫째와의 터울이 어울려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고민을 자꾸만 뒤로 미룰 수는 없었다.
아내 역시 육아가 쉽지 않음을 느끼는 듯 했다. 육아로 인한 휴직도 커리어를 쌓는데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힘들게 임용고시를 합격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놓고 싶지도 않았다. 아내와 참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나의 생각은 확고했지만, 그것을 강하게 주장하기 힘들다. 결혼을 한 이상, 내 인생이 어디 오롯이 내 것이 될 수 있을까. 결혼을 해보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선택권이 없다. 결정은 아내의 몫이고, 남편은 그 결정을 따를 뿐이다.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한 번이고, 후회하면 안 되잖아. 지나간 인생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지나간 일들을 후회한 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내가 보기에 둘째를 낳는 게 좋겠다. 너도 내가 이렇게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 둘째 낳는 것은 어렵지 않아. 아이를 잘 키우는 양육이 중요할 뿐이지. 잘 해보자.”
그런 과정을 통해서 둘째 유민이가 태어났다. 다시 군대에 가는 그 느낌으로 다시 육아를 시작했다. 병원에서 돌아올 유민이를 생각하면서 집안을 다시 세팅했다. 첫째 유정이가 입었던 옷들을 다시 꺼내서 빨았고, 차곡차곡 정리해서 옷장에 넣었다. 그렇게 유민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둘째 낳아주세요’라는 첫째의 애교 같은 것은 없었다. 아마도 그런 애교를 부릴 유아가 정말로 있을까 싶다. 내 주변의 친구들이 어떻게 둘째를 가졌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 한 적은 없지만, 퇴근하고 술 마시고 들어간 날에 둘째가 생겼다는 우스게 같은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아내와 나는 나름 진지하게 출산을 준비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방학이라는 시간이 있어서 출산도 그 시간에 맞춰서 계획한다. 그렇게 우리도 둘째를 계획하여 낳았다. 내 안에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라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단단히 먹지 않으면 잘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만큼 나에게 육아는 쉽지 않은 순간들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인생에 후회는 없어야 한다. 이건 자식을 많이 낳고, 적게 낳고의 문제가 아니다. 혼자 자라면 외롭다는 걱정도, 형제가 있다고 모두가 행복한 것도 아니다. 적어도 아내의 입장에서 아내가 후회할 선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하나인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엄마가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엄마에게는 둘째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엄마의 입장에서 하나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꼭 둘 이상은 낳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아내의 인생에 후회스러운 일은 만들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육아가 힘들어서 첫째만으로도 만족한다는 것은 결국 나만을 위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런데 부부는 그럴 수 없다. 둘이 만족할 수 없다면 그건 잘못된 결정이다. 때로는 누군가의 주장을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부부의 관계다. 그래서 나는 내려놓았다.
육아는 분명 힘들다. 그런데 첫째를 키워보니 육아의 힘든 시간이 영원한 것도 아니었다. 이유식과 기저귀를 뗄 정도만 되면 어느 정도의 힘듦은 사라졌다. 그러니 짧다면 짧은 그 시간을 참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 순간을 조금 편하게 살자고 ‘하나만 낳아서 잘 살자’는 나의 주장을 펼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둘째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