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나" 고우"나"
Part 2_ 불필요한 고통 뒤에 내가 기다리는 것.
두 달간 7번의 발레 레슨을 가고 14편의 글을 쓰고 정서적 허기 좀 채웠다고 해서 내 모든 우울이 씻은 듯이 사라지거나 내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다. 어림없는 일이다.
하지만 일상에 아주 작은 변화와 활력을 불어넣자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던 부정적인 생각의 부유물들이 가라앉고 가려져있던 좋은 생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도 나는 아이들을 예뻐했지만 그때의 나는 일 자체의 소중함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살면서 아이도 낳고 사업에 실패도 해보고 다른 일도 해보니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몸소 깨닫게 되니, 뻔하고 흔하게 듣던 이야기가 나에게 전혀 뻔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다.
나와 합이 잘 맞는 일이 아이들과 발레 수업을 하고 아이들이 웃는 것을 보는 것이라는 것을 돌고 돌아 깨닫게 된 셈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실패하고 가장 괴로웠고 통째로 도려내 버리고 싶던 시간들을 뚫고 지나오자 전보다 더 많이 감사하고 내려놓을 건 내려놓을 줄 알게 되었는데 우울에 가려져 내가 이런 변화가 있었다는 것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습관적이게 우울에 젖어 지내왔다. 어떤 일에 홀리지 않는다는 불혹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삶이 어렵고 두렵고 서툴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한쪽 어깨에는 희망을, 한쪽 어깨에는 우울을 얹고 언젠간 양 어깨가 편해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씩씩하게 살아나가야지.
내가 아파보니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문구에는 나 역시 동감을 하지 못하겠다. 물론 나는 들판의 야생마 마냥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전에 비해서는 많이 점잖아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무탈하고 평온하고 자잘하고 하찮은 아픔만 있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채찍은 이제 그만 거두고 당근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싶다.
내면의 허기진 부분을 조금 채우자 가장 선명하게 깨닫게 된 것은 내 삶에 대한 열망이었다.
나는 죽고 싶은 마음의 몇 곱절이나 내 삶을 잘 살아내고 싶어 하고 있었기에 써보지도 않던 글을 써보고, 20년 만에 발레 수강을 하고 내 일을 더 열렬히 사랑하며 나 자신에게 매달리고 있다. 내 인생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서 기다려보자고 스스로를 도닥인다. 나에게 필요했던 고통이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겠지만 이미 뚫고 지나왔으니(그래야만 한다) 상관없다. 나는 화려할 필요도 없고 대단할 필요도 없는 그땐 힘들었지, 하며 말할 수 있는 그저 평안하고 소소하고 잔잔한 삶이 다시 내게 다가올 날을 매일 기도하며 조용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