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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메랄다 Sep 28. 2022

누군가에게는 전혀 연습이 필요 없는 연습

Where_Who_What

5월 즈음 여름이 오기 전 늦봄 무렵  나와 아이는 마트에 갔다가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를 우연히 만나 서로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마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늘 하는 질문을 했다.

"우리 어디 다녀왔지?"

"마트"

"마트에서 수족관에 갔는데 우리 어떤 거 봤지?"

"......"

"우리 하얀 토끼도 봤지?"

내가 힌트를 주었더니 곧 거북이, 새, 물고기라고 대답을 한다.

"맞아 잘했어. 주원이 마트에 누구랑 갔어?"

"음.. 할머니"

"주원아 오늘 마트에 엄마랑 온 거야. 마트에서 친구도 만났지?

친구 이름이 뭐야?"

아이는 같은 반 친구들 이름을 몽땅 나열하기 시작했다.

"주원이 엄마랑 마트 와서 오늘 유건이를 만났어"

나는 이 질문들과 답을 집에 가는 길에 여러 번 반복했지만 결국 집에 도착할 때까지 "유건"이라는 이름을 듣지 못했다. 유건이는 같은 질문에 아주 쉽게 대답했으리라.

엄마로서 그 순간에는 속이 상하고 안타까움에 가슴도 아프지만, 보통의 또래 아이들은 연습이 필요 없이 스펀지처럼 흡수되는 언어능력이, 우리에게는 시간과 연습이 필요한 것뿐이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에 비해 발전되는 부분이 있음에 감사하며 우리의 속도대로 행복하게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금세 나의 아이를 응원해준다.


"어디에"

"누구와"

"무엇을"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 지금도 반복하고 있는 훈련이다.

너무도 쉽고 간단한 대답에도 엉뚱한 소리를 하니, 맥이 탁 풀릴 때도 있지만 마트에 갈 때마다, 혹은 놀이터에서 놀고 난 후 나는 늘 같은 질문들을 반복해주었다.

이제 아이에게 "어디에 누구와 무엇을 했어" 질문을 하면 간결하지만 잘 대답해준다.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는 것은 아직도 서툴고 , "Why" 왜는 더 어렵다.  

만약 코에 상처가 나서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왜 이렇게 되었냐고 해도 웃으면서 "괜찮아요"라고만 하니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아이가 과묵해서가 아니라, 바로 오늘 있었던 상황을 설명하기를 어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올 초 다섯 살이 되고 추운 1월에는 하지 못했던 " 안녕하세요"를 수천번쯤 연습한 뒤 여름이 올 무렵에는 하게 되었고, 초여름부터는 누구와 어디를 간 건지 정도는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신호이다.

11월이면 아이는 네 돌이니까 아직은 세돌 하고 몇 개월 지난 작은 어린아이이다.

생일도 느리고 말도 느린아이라 아직도 아기같이 귀여운 맛은 있다. 아이가 멈추지 않고 느릿느릿 말을 배워 나가고 있고 나는 아이가 하나뿐이니 말을 배우는 이 귀여운 시기를 다른 부모들보다 좀 더 오래도록 누리는 즐거움을 얻었다는 생각도 한다. 일찍 언어치료를 했음에도 하위 100프로 가까운 언어능력을 가졌던 아이가 드디어 천천히 조금씩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엄마에게 희망적이고도 좋은 시그널이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연습들을 시키는 중이지만, 차차 발달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어쩌면 내가 우리 아이를 말로 못 당하는 날이 머지않은 건 아닐까? 하고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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