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은 둘째치고 가족생활 그렇게 하시는 거 아닙니다.
어머니가 선을 넘으셨다.
며느리가 미워서 며느리 욕은 해도 며느리에게 갖은 면박을 다 줘도 가족은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선을 넘으셨다. 남편과 싸울 때에도 서로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 게 국민 룰이다. 그런 대국민 룰을 깬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딸 자랑을 자주 하신다. 아들 자랑은 곧 내 남편 자랑이니 들어줄 만 한데 딸 자랑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심지어 남편에게 듣는 시누이와 어머니께 듣는 시누이는 매우 격차가 커서 이젠 어머니 말을 100프로 믿지도 않는다.
어머니는 시누이가 매우 사교적이고 성격이 좋아서 친구도 많고 모임을 자주 가진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시누이가 퇴근한 평일에도 저녁마다 누굴 만나고 온다고 직장 사람들이 시누이를 그렇게나 좋아하는 것 같다며 자랑하신다. 물론 이런 이야길 나중에 남편에게 전하면 코웃음을 친다. 누나보다 자기가 친구 100배는 많다고 하면서 말이다. 유치원 때부터 선생들이 우리 딸을 제일 예뻐했다, 학창 시절에도 일진들도 내 딸은 못 건드렸다, 전학을 갔는데 너무 예뻐서 다른 반에서도 우리 딸 보러 왔었다 등 과거의 영광을 나열하는 자랑도 서슴지 않는다. 이젠 마흔이 가까운 우리들에게 지금도 그런 자랑을 하시다니 놀라울 때도 있지만 나도 내 새끼가 제일 예쁘듯 그런 마음이셨으리라 생각하고 들어 드렸다.
그러다 어느 날 직장생활 이야기가 나왔는데 어머니가 또 딸 자랑을 하시기 시작했다. “얘는 직장 사람들이 그렇게 아끼나 봐. 퇴근하고도 뭐 그렇게 통화하며 수다 떨고 만나고 그러더라.”하고 운을 떼셨다. 남편은 직장 사람들이랑 퇴근하고 도대체 연락을 왜 하냐며 누나가 이상한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나에게
“너는… 너는 네가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니?”라고 물으시는 게 아닌가. 일단 저 질문 자체에 이미 의도가 있었고 나의 대답을 듣기 전에 이미 답은 가지고 물으신 상태였다. 내가 사회성이 부족하고 사회생활을 못할 거라는 단정 하에 물으신 거다. 나는 내가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또 그렇다고 엄청 못한다는 생각은 없다. 직장 내 ‘또라이’가 없으면 바로 나라고 하는 말에 돌이켜보니 그래도 같이 욕할 또라이가 한 명쯤은 늘 있어주어서 내 곁엔 든든한 동료들이 존재했다. 나도 직장 내에서 만들어진 사모임이 있는데 10년째 유지 중인걸 보면 그래도 사회성이 보통 사람 수준은 되나 보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내가 혼자 자라서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하셨다.
“난… 아닌 것 같아.. 너 사회성이 좀 부족하지 않니? 혼자 자라서 그런 것 같아.”
시댁 식구보다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활발하지 않은 내가 어머니 눈에는 사회성 부족으로 비치셨나 보다. 직장 생활에서 단 한 번도 나를 보지 못한 어머니가 나를 그렇게 평가하니 어이가 없었다. 직장 상사가 나에게 그런 지적을 했다면 오히려 뜨끔하고 나를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하는 모습도 사람들과 지내는 모습도 못 보신 분이 그렇게 함부로 내뱉으시는 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쩌면 시댁에서 진짜 내가 사회성이 부족한 인간처럼 부적응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 직장 선배에게는 애교도 부리고 작은 선물도 사드리며 예쁨 받으려 노력했었지만 시어머니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애초에 시어머니께 예쁨 받으려 생각한 적도 노력한 적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시어머니는 나를 딱딱하고 무디며 융통성 없는 며느리로밖에 볼 수 없었으리라.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런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는지 상대방의 기분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말하는 걸 보니 진짜 사회성이 부족한 건 어머니가 아닌가 싶었다.
여기까진 그래도 참을만했다. 어머니의 말을 들을 때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슬퍼지려는 걸 꾹꾹 누르고 있었다. 그 상황이 어쩔 줄 모르겠고 울분이 차오르기도 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정리되지 못하는 내 마음은 마치 파도치듯 일렁이며 크게 요동쳤다.
그런데 그다음에 이어지는 어머니 말에 난 파도가 멈추듯 차분해졌다. 어쩌면 차갑게 얼어붙은 것에 더 가까웠다.
“너네 엄마가 너를 그렇게 키워서 그렇지. 너네 엄마 성격이 너랑 똑같지? 너네 엄마는 어떠니? 너네 엄마는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네.”
지금 며느리 말고 사돈의 사회생활까지 걱정해주시는 건가. 정말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우리 엄마의 사회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엄마 주변에 좋은 친구분들이 참 많고 엄마가 아끼시는 또 엄마를 아껴주는 분들도 여전히 많다. 또 만약 직장의 사회생활을 논한다면 전업주부로 지금까지 사셨던 어머니보다는 평생 일한 우리 엄마가 더 경험이 많을 것이다.
휘몰아치던 감정이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나와 우리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부터 저런 분이었구나, 더 이상 어떠한 노력도 기대도 하면 안 되는 것이구나,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구나. 나는 그렇게 마음을 닫기로 결정했다. 관계를 끊을 생각은 전혀 없다. 내 남편의 어머니이고 내 자식의 할머니이므로 우린 어쩔 수 없이 한 가족이다. 가족의 연까지 끊으며 얼굴 붉히는 삶을 살고 싶진 않다. 시댁에서 더더욱 사회생활 꽝인 며느리로 살기로 했다. 그저 무미건조하고도 예의를 갖추는, 거리를 두는 관계가 되어야 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어머니께 조목조목 따지며 반박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러질 못했다. 일단 나에게 들어온 공격을 논리적으로 받아칠만한 여유가 없었고 싸늘하게 식어가는 머리와 가슴은 얼어붙은 채 나를 아무 말도 못 하게 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애꿎은 남편에게 펑펑 울며 따졌다. 속되게 표현하면 ‘지랄’했다고 하는 게 더 가깝다. 남편은 이야기를 듣더니 “우리 엄마가 잘못했네, 내가 미안해. 우리 엄마가 잘못한 거 맞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하며 나에게 빌고 또 빌었다. 남편의 사과가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나의 닫혀버린 마음을 남편은 이해했고 한동안 내 앞에서 시댁 관련 이야기는 먼저 꺼내지 않았다.
나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라 나에게 던져지는 작은 돌에도 물을 튀기며 출렁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그릇에 던져진 커다란 바위는 모든 물을 넘치게 했다. 돌덩이는 그릇에 엉성하게 얹힌 채 날 답답하게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큰 돌덩이 덕에 난 이제 어떤 작은 돌에도 꿈쩍 않게 되었다. 내겐 더 이상 출렁일 물도 심지어 퐁당 튀겨낼 물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당시의 분노와 미움도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지금까지 나에게 한 모든 말을 다 잊는다 해도 마지막 이 말은 잊을 수 없다. 아니, 잊지 않을 것이다. 힘들게 ‘사회생활’하며 나를 키워준 우리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