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결혼 반대일세
혹시 먼 훗날 나의 자녀가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그때 난 어떻게 반응을 할까? 너무 이른 결혼이라 말리게 될지, 너무나 기다렸던 결혼이라 반가워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결혼을 한다고 할 때 함부로 섣불리 반대하진 않을 것이다. 반대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면 차라리 끝까지 반대를, 아니라면 애초에 말린다는 느낌조차 주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사실 어머니는 우리의 결혼을 반대했었다. 당시 결혼을 반대한다는 것이 매우 충격이었는데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종종 남편에게 어머니가 그래서 결혼을 반대하셨냐고 비꼬듯 말하면 남편은 우리 엄마가 언제 그랬냐며 머쓱해한다.
남자 친구와 내가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길 나눈 뒤 각자 부모님께 결혼 계획을 말하기로 하였다. 우리 부모님은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시작하셨는데 남자 친 구 쪽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별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부모님께 말해봤어? 뭐라셔?”라고 물었는데 남자 친구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말했다.
“엄마가 사실 결혼을 반대해.”
그날 우리는 정말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난 내가 결혼한다고 하면 시부모님이 두 팔 벌려 환영해줄 줄 알았다. 기쁜 마음으로 반겨주며 결혼 진행에 속도를 더해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큰 착각이었다. 남자 친구가 어머니께 결혼 이야길 꺼내니 어머니는 아들 앞에서 우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직 결혼시킬 준비가 안되었다고 하셨다. 아들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된 건지 아니면 결혼을 시킬 금전적 준비가 덜 된 건지 알 수 없다. 준비가 안되었다고 우는 엄마 앞에서 아들은 당황하고 두려웠나 보다. 그렇게 아무 말도 더 하지 못하고 돌아온 남자 친구는 마치 전쟁에서 패한 패잔병처럼 헤어짐과 결혼 사이 멈춰 서서 그저 슬퍼하고 있었다.
지금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래 준비 안 된 엄마랑 영원히 꼭 붙어살아라”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헤어짐을 선택할 것 같다. 그러나 사랑에 유약했던 어린 나는 남자 친구와 헤어진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고 반대의 벽에 그저 애처로워할 뿐이었다.
난 나 스스로가 자신 있었다.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는 아니어도 나를 사랑했고 이러한 날 사랑해주는 남자 친구와 행복하게 살 의지가 가득했다. 성실하게 직장도 잘 다니고 있고 그동안 일하면서 열심히 모아두어 결혼 자금도 어느 정도 마련했었다. 우리 부모님도 딸 기죽지 않게 결혼에 필요한 자금을 보태주시겠다고 했다. 신혼집 한 채를 턱 준비해 갈 여력은 못되어도 남자 친구와 반반, 어쩌면 그 이상은 할 수 있는 상태였다. 가장 중요한 건 남자 친구와 나는 입맛, 유머 코드 등 소소한 것부터 성향, 가치관까지 비슷하여 잘 맞았다. 이 정도면 결혼해도 문제없을 한 쌍의 남녀임에 확신했다.
그래서 더더욱 서른도 훌쩍 넘은 아들의 결혼을 반대한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어머니 앞에서 무력한 남자 친구에게 서운하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결혼 자체보다는 ‘나’를 반대하는 느낌이 들어 더 속상했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로는 결혼을 반대했던 이유가 단순히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들을 보내기 싫은 마음이 크셨겠지만 실제로 ‘나’를 반대한 것이 맞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 결론적으로 남자 친구는 나와 헤어지지 못했고 그것을 지켜본 어머니가 포기하고 결혼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꺼림칙한 마음을 떠안고 결혼이 진행되었다. 사실 결혼하기로 결정되고 나니 큰 문제없이 모든 게 잘 흘러갔다. 어머니의 망설임이라는 걸림돌을 치우고 나니 결혼 마차는 속도를 내서 달릴 수 있었다.
어머니의 반대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님에게도 충격이자 약간의 상처가 되었다. 나의 귀한 딸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에 혹여나 우리 집이 부족한 건 아닐까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신 걸까 엄마도 마음을 졸이고 또 졸였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 후 시어머니와 단둘이 있던 때 나는 참고 참다 여쭈어보았다. 왜 결혼을 반대하셨느냐고 말이다. 반대한 결혼 치고 남편과 나는 너무 잘 살고 있었고 누구나 인정하던 터였기에 물어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나와 내 남편이 성격이나 문제를 대처하는 모습이 비슷해서 걱정되었다고 한다. 우리 둘이 너무 똑같아서, 둘 다 예민하고 고민 많은 애들 같아 보여 이 세상을 어찌 살아갈지 불안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더욱이 독립해서 혼자 산 적도 없고 부모 밑에서만 컸던 애들이라 염려스러우셨단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원래 결혼이란 게 부족하고 미숙한 남녀가 만나 서로를 채우고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난 그때 어머니께 걱정 말라고 세상은 같이 배워가면 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나보다 더 똑 부러지고 능력이 우수한 며느리를 원하셨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부자 며느리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또는 아들이 장가가는 게 마냥 싫으셨던 걸 수도 있다. 완벽한 결혼을 꿈꾸던 내게 어머니의 반대는 큰 생채기가 되었다. 시어머니가 결혼생활의 오점이 될 것이라는 예고이기도 했지만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생채기는 생각보다 강했고 그로 인한 흉터는 어머니가 툭 내뱉은 말에 자극이 되어 욱신욱신 쑤신다.
이런 일을 겪고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다. 나의 자식이 결혼하겠다고 데리고 온 누군가를 받아들일 때 눈물 흘리며 감정에 호소하지 않기 그리고 결국 결혼시킬 거라면 반대하지 않기. 반대하는 느낌이 전달되지 않게 조심하기.
에휴, 그런데 나도 몇십 년 후엔 시어미니와 똑같아지려나?